김삼웅 선생의 리영희 평전이 얼마전 출간되었다. 책이 완성되고 며칠 후 리영희 선생이 돌아가셨다.
우리 세대는 리영희의 그늘에서 벗어난 세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와 그의 사상적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그나마 조금 이루어냈던 민주화 속에서 그 옛날이면 빨간 책이라고 나오지 않았을 책들을 그냥 읽을 수 있었던 세대이고, 소련이 해체된 후 탈현대 혹은 탈근대 등등의 얘기와 오렌지의 얘기가 횡행하던 시절에 대학을 다녔으니.
그런데, 이제 나이들어 그 책을 보면 매우 새삼스럽다. 사상적 차이, 이념의 차이, 혹은 정치적 입장의 차이는 막론하고 그의 태도에서 가장 높이 사는 것은 원전을 대하고 증거를 들이미는 치밀함이다. 나 역시 공부하면서 해본 적 있지만, 수십년이 흐른 후 발표되는 미국 정부의 각종 기록들을 통해서 리영희가 많은 자료를 보고, 객관적이며 엄정하게 글을 쓰고 평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도, 논쟁을 하는 모든 사람, 언론인에게 특히 요구되는 자세일 것이다.
며칠 전 나는 회사에서 'G20세대의 국제무대진출방안'을 내 보라는 문서를 보았는데, G20세대가 무엇인지 알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내지 않았다. 그런 용어를 선점하거나 용어를 만들어내어 사람들의 인식을 흐리는 일은 요즘 너무 많다. 내가 가장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다문화사회'라는 용어이다. 그 용어는 정부가 만들어낸 용어로서, 이제 공식화되어 버렸다. 누구나 쓰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사회가 다문화사회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다만 다인종 국가로 변모하는 가운데 있을 따름이지, 우리 사회는 철저한 동화정책을 펼 뿐이다. 그리고 이론적으로도 실제 다문화주의를 채택했던 캐나다나 호주의 사례를 통해 다문화주의에 반대하는 학자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아무튼 리영희는 공자말씀에 따라 모든 사물에게 정확한 이름을 붙이는 것이 바른 언론인의 자세라는 점을 항상 강조했다고 하니, 새삼 그 얘기가 눈에 들어온다.
리영희처럼 출세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본인의 삶에 엄격하고 사회에 대해 지사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요즘은 더욱 새삼스레 느끼고 있다. 더욱이 그때 리영희도 우리 민주화를 해치는 원흉이, 사상적 균형을 맞추지 못하도록, 이성적 토론이 불가능하게 하는 가장 큰 책임이 언론에 있다고 했다는데, 요즘은 그런 세태가 더욱 심각한 것 같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빼앗긴 대지의 꿈, 쟝 지글러 (0) | 2011.03.04 |
---|---|
문학의 숲을 거닐다-장영희 (0) | 2009.05.22 |
이 세상 끝에 사랑이 있다 하여-황경신 (0) | 2009.05.18 |
한밤으로-황동규 (0) | 2009.05.18 |
문의마을에 가서-고은(05년) (0) | 2009.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