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감각이 이끌어내는 기억의 타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이야기 할 때, 이제는 클리쉐가 되어 버린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소설의 시작을 얘기한다. 마들렌으로 시작된 비자발적 기억의 연속으로 500명 이상의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대작이 구성되는 소설.

 

요즘 텔레비전에 등장하여 허약한 체질과 황당무계한 입담으로 대중을 웃기는 그 김태원이 내게는 '마들렌'의 구실을 한다. 그는 대단한 카리스마의 뮤지션이었다. 더구나 우리 세대에는.. 나조차도, 부활 1집, 2집을 고등학교 시절, 재수시절 내내 귀에 꽂고 살았다.

 

그의 기타연주가 조금 말랑 말랑해진 때가 보컬 이승철이 사라진 음반 부활 3집이었는데, 그 때는 1993년 내가 대학때였다.

 

당시 "사랑할수록"의 선풍적인 인기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서, 온 길거리 음반가게, 리어카, 카페, 라디오.. 하루에도 몇 번을 듣게 되는 노래라, 너무나 지겨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결정적으로는 이 노래를 나의 첫 남자친구가 너무나 좋아하고 자주 불렀는데, 그 때문에도 더 싫어하게 되었던 것같다. 정확한 당시 상황은 기억이 나지않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 노래를 들을 때는 그 녀석과 헤어질 때는 자동적으로 연상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노래는 나의 첫 이별의 노래로 기억되었다. 1994년 1월.

 

지난 달 중순에 학교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축제기간이었다. 그때부터 어렴풋이 이런 증세가 생기기 시작한 것같은데, 지지난 주 비내리던 목요일에는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부활 1집을 찾았으나, 절판되었다는 얘기를 들었고, 어지간한 부활의 히트곡이 들어있는 이승철 20주년 기념공연 라이브를 샀으나, 딱 한번 듣고 후회했고..

 

오늘 또 부활의 1집을 들어보기라도 하려고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김재기가 부른 사랑할수록을 마주치고는 아프면서도 자꾸 이 노래를 듣고 있는데...

 

94년 축제기간, 군대가기 전 마지막으로 찾아온 남자친구를 만나 홍대 앞 카페에 가서 대낮에 하이네캔 한잔을 마시고 검은색 More담배 한대를 피고 학교 앞으로 돌아와, 잘 가라..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순간 눈물이 뚝뚝 떨어져, 입술을 앙물고 눈물만 흘리다 학교 뒷산에 도착하는 순간 엉엉 울었던 기억.

 

첫사랑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그 젊은 날 헤어짐의 순간에도 햇살이 반짝이던, 가슴속에 주체하지 못하는 열정과 어리석음이 함께 있었던, 그 때... 그때는 어려웠지만 지금보다는 쉽게 사람을 사랑했던 나.. 내가 그립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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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오페라 아리아 모음집을 산 적 있다. 2장짜리 CD였는데, 가요나 팝을 빼고는 이런 compiliation음반을 사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노래부른 사람들이 괜찮은 성악가들이라 샀고, 그 중에서도 나는 삼손과 드릴라에 나오는 '그대 음성에 내 마음떨리고'라는 아리아와 R. Strauss의 작품 중에 '아버지'어쩌고 하는(기억이 안나니 용서하라) 곡을 좋아했다.

그리고.. 이 노래.. 드보르작의 Rusalka라는 오페라 아리아 '달에게 바치는 노래'혹은 '달의 노래'로 번역되는 노래를 정말 좋아해서 듣고 또 듣고 했다. 간혹 메시앙같은 현대음악가의 곡을 사기도 하지만, 역시 내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은 감성이 풍부하다는 평을 받는 드보르작이나 브람스쪽인 것같다. 그들의 첼로협주곡이나 심포니를 좋아하는 걸 보면..

루살카는 슬라브민족 신화에, 혹은 설화에 등장하는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물에 빠져죽은 정령을 뜻한다고 한다. 이 오페라의 줄거리는 인어공주와 비슷해서 루살카가 어느 왕자를 보고 사랑에 빠져 마법의 힘으로 그와 결혼을 하지만, 금기를 어겨 왕자와 헤어지게 되고, 뒤늦게 그를 찾아온 왕자가 루살카의 품에 안겨 죽는다(들은 얘기라 후반부는 정확치 않다)는 얘기라 한다.

여하간 5월.. 살랑 살랑 바람이 불고, 햇살이 비치는 이 오후에 어쩐지 손이 가서(어제.. 기도하면서 결심한 바를 행하기 위하여) 한참을 반복해서 듣다가, 노래가 너무 아름다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싸이에 있으면 배경음악을 하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듣고 싶은 사람은 벅스에서 로그인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으니 한번 들어보시라.

어짜피 체코말로 된 가사 나도 쓰기 괴롭고, 올려도 이해안될테니 영어번역 가사를 올려본다.

O moon high up in the deep, deep sky,
Your light sees far away regions,
You travel round the wide,
Wide world peering into human dwellings
O, moon, stand still for a moment,
Tell me, ah, tell me where is my lover!
Tell him, please, silvery moon in the sky,
That I am hugging him firmly,
Than he should for at least a while
Remember his dreams!
Light up his far away place,
Tell him, ah, tell him who is here waiting!
If he is dreaming about me,
May this rememberance waken him!
O, moon, don't disappear, disapp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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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음반을 샀다. 러시아 로망스.. 내가 이 것을 산 것은 순전히 푸시킨의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라는 시에 곡을 붙인 것이 수록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씨디를 사니, 물론 가사는 없는 첼로 연주곡이지만 다른 곳이 하나 들어왔다. 그 곡은 빛나라 빛나라 나의 별이여.. 라는 곡이다. 그리고 씨디 해설집에 친절하게 다들 번역되어 있는 그 가사들 중 '나 홀로 길을 가네'라는 유명한 곡의 가사가 눈에 뜨인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내가 창조할 수 없다면 아는 걸로 표현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그렇지만 나는 침묵을 무기로, 방패로 삼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어려워.. 이 시를 보며 마음을 투영해본다.

 

나 홀로 길을 가네

안개속에서 돌길은 반짝인다

밤은 고요하고, 황야는 신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별은 다른 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별은 다른 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하늘의 모든 것들은 장엄하고 놀랍다

땅은 푸른 빛 안에서 잠들어 있다

나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내가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무엇을 아쉬워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무엇을 아쉬워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이미 삶에서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게 되었고

과거의 어떤 것도 아쉬워하지 않는다

나는 위안과 평화를 갈구하고 있다

모든 것을 잊고 잠들었으면

모든 것을 잊고 잠들었으면 한다

 

그러나 무덤의 차가운 꿈이 아닌

영원히 잠들고 싶다

가슴속에서 삶의 에너지가 전율하듯이

숨쉬며, 가슴이 고요하게 부풀어오르듯이

숨쉬며, 가슴이 고요하게 부풀어오르듯이 말이다.

 

밤낮으로 나의 청각을 애무하며,

달콤한 목소리가 사랑에 대해 나에게 노래를 부르도록,

내 위에서 영원히 시들지 않는 푸른빛을 발하며

검은 참나무가 기울어져 소리를 내도록

검은 참나무가 기울어져 소리를 내도록 말이다.

 

 

안식은.. 내게 오기 전에 나에게 많이 사랑할 기회를 주었으면, 그래서 삶을 충실히 살아가면서 죽음에 가까이갈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세상에 이상한 일 투성이..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이 점점 많아지는구나.. 견디고, 이겨내고.. 나 스스로 전투적 의지를 불태우며 그리 살아갈 수 있을려나.. 약하지 않고, 튼튼하게. 언젠가 깊은 숨을 쉬면 그 속에 땅의 에너지가 내게 스며들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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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브람스가 좋다. 낭만인가. 내 기억속의 엄마는 클래식 음악을 그리 즐겨듣지는 않았는데, 엄마가 브람스가 좋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왜 그랬을까. 프랑스와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영화를 기억했기 때문에 괜히 한번 아는 척 해 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여하간 브람스의 교향곡, 독일레퀴엠과 Sextet을 주로 듣는데 오늘은 3번 교향곡을 듣고 있다. 지난 며칠은 레퀴엠에 빠져있었고.. 브람스의 교향곡은 어지간한 심포니 연주를 듣다보면 한 두번씩은 만나게 된다. 주로 듣게 되는 것이 1번과 4번이긴 하지만..

 

교향곡을 많이 듣는 사람들이 귀가 트여야 듣는다는 말러는 별로 감흥이 없는데 비해서, 브람스는 귀와 가슴이 동하는 음악이다.

 

교향곡 3번 3악장. 누구나 다 한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주 흔한 선율, 늙은 세대는 사강의 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영화를 떠올릴 것이고, 젊은 세대는 노다메칸타빌레를 떠올릴테지만.. 여러 곳에 삽입되었던 그 곡은 좋은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연주하면 선율이, 현이 춤을 추듯 긴장되면서도 미끄러지는 음을 들려준다.

 

아름다운 음악. 말하지 못한 열정과 에너지, 갈등... 오늘도 역시 음악이 내 말을 대신한다. 누가 알아들을까. 나는 거문고를 타지 않지만, 내가 이 음악을 들을 때... 내 감상을 알 만한 사람이 세상에는 있는 것일까. 아니다. 이제는 그냥 이런 음악을 작곡한 사람, 그것을 연주한 오케스트라가 있고 내가 들을 수 있고.. 조금이라도 마음을 씻어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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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요즘의 우울함을 어깨에 딱 달라붙은 등껍질처럼 지고,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로 가서 투란도트를 봤다.

 

말그대로 얼음공주 투란도트와 사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류. 어쩐지 둘다 소프라노같다.. 음색이 딱히 구분되지 않는다 생각했더니, 둘다 소프라노의 배역이었다. 보통의 오페라는 여자소프라노 주인공과 메조소프라노의 조역, 혹은 투란도트같은 위엄을 갖춘 역에는 메조를 쓰는데 이 역은 달랐다. 그러니까 굳이 소프라노로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마도, 투란도트가 어린, 남성혐오증을 가진 공주였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가 방점을 두고자 했던 것은 투란도트의 공주로서의 위엄같은 것보다는 혐오증과 두려움, 그리고 결국에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여성으로서의 변모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대척점에 둔 하인 류의 경우..

 

류가 죽은 후에 이어지는 투란도트와 왕자의 사랑의 아리아는 어쩐지 맥빠진 사족같이 느껴졌다. 아마도 그것은 해피앤딩으로 끝나는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류의 죽음에서 듣게 되는 3중창과 합창이 너무나 장대하고 감정적으로는 거의 피날레에 해당한다고 느꼈기 때문일것이다. 역시 이 부분까지가, 푸치니가 죽기 전에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  이 곡이 끝난 후 아마도, 타무르의 대사였던 것같은데, The Offended sprilt will have revenge라고 하였다. 갑자기 그것이 마음에 박혔다. 내 상태가 그런가? 뭐 나야 복수할 것이 뭐있나. 복수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서도..

 

투란도트의 세가지 수수께끼

 

첫번째 수수께끼
공주: 그것은 어두운 밤을 가르며 무지개 빛으로 날아다니는 환상. 모두가 갈망하는 환상.그것은 밤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아침이 되면 죽는다.
왕자: 그것은 '희망 (La Sprenza)’

번째 수수께끼
공주: 불꽃을 닮았으나 불꽃은 아니며, 생명을 잃으면 차가워지고, 정복을 꿈꾸면 타오르고, 색은 석양처럼 빨갛다.
왕자: 그것은 ' (Il Sangue)’

번째 수수께끼
공주: 그대에게 불을 주며 불을 얼게 하는 얼음. 이것이 그대에게 자유를 허락하면 이것은 그대를 노예로 만들고, 이것이 그대를 노예로 인정하면 그대는 왕이 된다.
왕자: 그것은 바로 당신, '투란도트 (Turandot)!’

 

 

그녀의 수수께끼는 가만 보면 언뜻 세상사를 많이 아는 사람이나 물을 수 있는 것처럼도 보이는데, 나름의 정신분석학, 여성학, 철학적 알레고리를 만들어 보려해도 쉽지는 않다. 그래.. 다른 오페라들처럼 그저 부르조아 사랑얘기로 낭만의 극치로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생각한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생각보다 무대가 작다. 아무튼 이번 공연은 내 판단에는 소프라노, 특히 투란도트 역의 소프라노는 그 역할에는 사실 카리스마나 연기가 조금 떨어지는 듯했고, 음악감독보다 미술감독을 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굉장히 모던한 무대와 의상이 그나마 흥미로웠던 공연.

 

.. 류가 죽을 때 사실 눈물이 났다. 그 여자 노예가 어느날 하루 우연히 자기를 보고 웃어준 왕자를 사랑해서 그의 사랑을 완성시켜주기 위해 몸을 던지는 이 신파같은 얘기에.. 눈물이 났다. 사실 그렇다.. 그 웃음이 얼마나 눈부셨을까. 그 생각을 하니 괜시리 감상적이 되었다. 오늘도 훌륭한 네이버에서 그 아리아를 듣는다. 마지막.. 그녀의 죽음의 아리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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