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금요일. 나는 회사에 앉아 남은 일을 하고, 글을 본다.
연말부터 몹시 힘들게 보내며 아무 일도 하지 못하다가 이제 조금 회복 중이다.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아마도 내가 늙어간다는 것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흔이라는 상상하지 못했던 나이가 된다는 것. 아직은 가정을 꾸리지 못했다는 엄연한 사실과 그것 자체보다는 일상에서 느끼는 주눅드는 심정과 은연중의 차별, 고정관념때문에 이도 저도 아닌 수인.. 그 나무 상자에 사람이 갖힌 형상을 하고 있는 한자처럼, 그렇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대학 졸업할 때에도 공부를 제법 하던 동기들이 그냥 사모님의 길을 택할 정도로, 기업체 입사에 여성 T/O가 눈가리고 아옹할 정도의 규모로 정해져있었다는 것을 보면 나의 역할 모델을 찾기도 매우 어렵다.
그래서 얼마전부터는 나이가 들어서도 사랑하고, 멋지게 산 여자들을 찾아보고 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여자로서 40대 중반에 아이를 임신한 모니카 벨루치도 보고, 오늘은 멜리나 메르쿠리를 찾아보았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스토리도 들은 적이 있다. 오래전부터 인권활동과 학자의 삶을 병행해온 나의 대학원 지도 교수가 그녀가 미국에서 망명생활할 때의 얘기를 들려준 적 있다. 홍대 앞 어느 술집, 5월 술한잔을 기울이며.
그녀는 내가 어릴 때 본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페드라' 영화를 좋아하는 아버지 덕에 가끔 명화극장같은 것을 같이 보곤 했다. 가끔 옆에서 아버지가 이 얘기가 어떤 얘기라는 얘기를 했다. 페드라를 외치며 자동차를 몰고 절벽으로 떨어지는 그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그 음악 선율이 귀에 오래도록 남았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였다.
멜리나 메르쿠리는 정치인, 명망가 집안에서 태어나 연극배우, 영화배우로 칸느 영화제에서 상도 받았고, 가수도 했고, 국회의원도 했고 문화부 장관도 했다. 그녀는 미인이지만 아주 여성적이고 어여쁜 얼굴은 아니고, 게다가 목소리는 더욱이 여성스럽지 않다. 그녀는 군부 독재에 저항했고, 미국에 망명했다. 그리스 인민들이 그녀를 너무 사랑해서, 골초인 그녀가 죽었을 때는 국민장을 했다고 한다. 나는 저 강인하고 약간 거만해보이는 여자가 좋다. 게다가 늙어서도 느껴지는 저 카리스마가 좋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녀가 명망가여서 매력이 있다기 보다는 다양한 재주를 가져서, 죽을 때까지 공적 임무를 갖고 정녕 그리스 인민과 그리스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싸워서, 죽을 위협에도 꿈쩍하지 않는 용기를 가져서.. 그래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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