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일이지만 지난 한주 제대로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멍하게 있다가, 이게 왠 일인가, 안타까웠다가 화가 치밀었다가 괴롭고 미안한 마음이 컸다.
27일 아침 잠시 대한문 앞 줄이 짧아졌을 때 문상을 하며 일주일 중 처음 눈물이 났다. 뭘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눈물이 났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저 분이 왜 죽었다고 하는거야. 나는 노무현대통령의 절대적 지지자가 아니었다. 물론 그의 가치와 이상, 정책 방향같은 것에 이의가 있었던 적은 크게 없었지만, 너무 사회를 시끄럽게 하는 것에 대한 불만, 그 언어... 그게 너무 싫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마도, 나의 친인척들 영향때문인지 이모부 중에는 그와 중학교 동창에 동향인 사람도 있어서 너무나 나와 가깝게(?) 나와 같은 류의 사람으로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이 걸어온 길에 대한 관심을 덜 가졌는지도.
밤에는 서울광장을 찾았다가 미술관 앞 정동길에 몰려갔다. 한 두어시간 앉아있다가 온 것같다. 옆에는 40대 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앉아계셨다. 누군가는 음모론을 얘기한다. "그 영민한 분이 그럴 리 없어" 사람들은 누구나 믿지 않고 싶은 것이다. 돌아가셨다는 사실도, 그런 죽음의 방법을 택했다는 사실도. 나도 그렇다.. 다른 사람들이 다 가더라도, 나는 무의식중에 그 분을 그리 알고 있었나보다. 절대 포기하지 않고, 투쟁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끝까지 갈 것이라는 것. 그래서 절대.. 절대 그럴리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부산출신이다. 박연차나 강금원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들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들이 얼마나 힘겹게 기업활동을 해왔는지, 노무현대통령과 어떤 관계인지.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돈이 필요하니, 다른 정치인들과 똑같이 기업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아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 둘은 부산 기업계에서도 주류가 아니다. 한사람은 초등학교만 나왔다는 소문이 돌고, 한 사람은 전라도 출신이다. 그들의 공장이 있는 곳도 잘 안다. 그 곳의 기업들이 대기업은 아니란 것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부산 경제가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된 일. 90년대 초반에는 이미 산업기반이 없어지기 시작한 때, 그렇게 어렵게 기업하며 모든 돈을 노무현대통령에게 갖다 주었을 때에는... 그들이 기업하며 뼈아프게 느낀 비주류로서의 설움을 사회의 문제로 돌려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이 밤이 지나면 영결식이 시작된다는 생각에 늦게 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 일이 진짜인가.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제 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다만, 잊지는 말자. 너무 쉽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 다짐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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