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나보다 먼저 '아줌마'의 길로 갔다. 내가 얼마나 '잔악'한 언니였는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바, 우리 동생은 입버릇처럼 자기 신세와 나의 '팔자'를 
비교하며 그렇게 얘기한다. "언니는 팔자가 좋아서 아이도 누가 다른 사람이 
키워줄 것같다."  여하간 1999년인지.. 내가 정식으로 우리 동생에게 그동안의 
악행을 사과하기까지 나는 동생에게 거의 '악마'나 다름없었다. 

어릴때 나는 바로 아래의 동생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아마 걔는 이러저러한 
사람들에게 나의 동생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을테다. 어릴적 나는 우리 동생이 
나보다 그림을 잘그린다는 사실, 그리고 문학적인 상상력이 발휘되는 곳에서는 
나보다 글솜씨가 낫다는 사실을 참 인정하기 싫었던 것같다. 

여하간에 1년간의 연애를 통해 결혼을 하게 된 동생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서 마음이 내내 무겁고 미안했다. 그리고 이번에 서울에 가서 동생과 
일주일동안 같이 있었는데 우리 조카는 17개월된 남자아이로, 온 일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동생은 시어머님을 모시고 산다. 시어머니는 아들만 
4형제가 있는데 김치담그기가 취미인 분이다. 나는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꼬돌배기'김치라는 것도 우리 동생이 시집을 간 후에 한번 먹어볼 수 있었다. 

동생이 안스럽기는 했지만 나는 미국에 있는 동안 동생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사람이 못가진 걸 부러워하는 법이긴 하지만, 착한 남편-막내라 좀 
답답한 구석이 없잖아 있다고 하더라도-과 이쁘고 똘똘한 아들과, 언제나 엄마 
엄마 자기만 믿어주고 신뢰해주는 그 아들이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달리 
부족한 것도 없이 사는 거 아닌가.. 나처럼 집도 없고, 애인도 없고, 돈도 
없고, 학위도 없고, 가진 것 아무것도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그런 신세에 
비하면 얼마나 그럴싸한가.. 내가 정말 하고 싶은게 결혼하고, 아기갖고 
그런거였으니까.. 

동생은 동생친구의 어머니께서 인근 병원에 입원했다고 전복죽을 쑤어갔다. 
첫째날, 내가 점심을 사준다고 불러냈는데, 비가오는 바람에 멀리 가지도 
못하고 어쩌다 간 곳이 정말 맛없는 스파게티집이었다. 그래도 동생은 
좋아했다. 

일주일동안 삼일을 백화점에 갔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동물원, 고궁, 공원 
이런데 가자고 했는데 동생이 도무지 피곤해서 움직이지를 못했다. "언니는 
아줌마들의 즐거움을 모른다." 백화점 가봐야, 아들 옷, 남편 옷이나 
들척이다가 사지도 못하고 오는데, 나는 살 거 없고 돈 없으면 백화점같은데 
안가는 성격이니까.. 그런데 가지 말자고 하는데도 동생이 하는 소리였다. 결국 
백화점에서 우리 조카 하나에 여자 넷이 매달려 잡아도 감당이 안되고 그날 
나는 뻗었다. 바닥에서 기고, 뒤로 넘어가고, 짜증내고, 혼자 걷겠다고 악쓰고, 
에스컬레이터 혼자 타러 뛰어가는거 잡으러 다니고.. 
그리고 와서는 어지르는 조카 쫓아다니며 집 치우고, 시어머니, 남편 따 때때로 
밥차려주고-늦게 집에 오면 먹고나 들어오지 왜 꼭 집에 와서 밥을 먹는지 
이해가 안된다. 암튼 시어머니와 함께 담은 간장, 된장, 김치, 다 싸서 세집에 
보내고, 그러고도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못듣고.. 

남편은 피곤하다고 새벽에 그렇게 안자고 깨는 조카만 피해서 침대로 저 방으로 
, 바닥으로 마루로 도망다니기 바쁘고.. 6일 휴일, 집에 들어와 계속 축구만 
보고 9시부터 잠자고, 동생과 나는 2시까지 조카 비위맞추고, 시어머니 
비위맞추고.. 동생은 예민한 조카때문에 옆으로만 누워서 팔베개를 
해준다고,허리 디스크에 잠못자고 만성피로에 간까지 상하고, 신장도 안 
좋아졌는데, 남편과 시어머니는 결혼전부터 아팠다고 철떡같이 믿고 있다. 

"언니야. 나는 나 잠 방해하는 사람은 다 속으로 욕한다. 니는 개새끼다. 근데 
아줌마들이 욕느는게 나 이제 이해가 된다. 내 친구들도 다 욕한다.. 이제 .. 
욕하나도 할 줄 모르던 아이들이 결혼하고 아이기르면서 욕이 늘더라. 근데 
욕하면 참 시원하다."하면서 웃더라. 서글퍼졌다. 돈 아낀다고 결혼하고 카페도 
안갔단다. 밤에 산책나와 커피나 마시자 내가 이끌어도, '롯데리아가자."하는 
동생을 보며 나 기겁했다. 교보문고에서 음반 할인한다고 왕창 사는 나에 비해 
이것저것 역시 보다가 안 사고 마는 동생보며 내가 잘못했다 싶었다. 된장찌개 
고추 안넣길래, 맛없다.. 그랬더니 조카가 싫어하니까 안된다고 했다. 

그래도 언니 있는 동안 잘 챙겨먹고 살았다고 하는 동생 보고 안스러웠다. 
"제발 다리좀 붙이고 걸어라." "언니가 모르는데.. 이게 아이를 낳으면 골반이 
벌어져서 붙이고 걸으면 걸음걸이가 이상해진다. 우리 남편이 많이 깔고 
앉아있었어야 했는데 하나도 안도와주더니만.. " 어쩐지 서글프다. 
사회생활하고, 돈버는게 쉬운 일 아닌 것도 알지만, 어째서 집에서 살림살고 
아이 기르는 사람들의 삶은 그렇게 힘들다는 인정조차 못받으면서 이렇게 
서글픈가.. 아이, 남편, 다.. 사랑해도 그들을 사랑하는만큼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는 왜 없는 건지.. 아직도.. 어쩜 세째에게 빨리 결혼하라고 
재촉하는 것도 잘못일까 싶기도 하고,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아줌마들 화이팅! (이 얘기 꼭 하고 싶다. 한국전쟁 터지고, 난민촌에서 
강하게 가족들 지켜낸 우리나라 아줌마들 없었으면 대한민국없었다. 6,70년대 
개발시대도 마찬가지다. 민주화도 남자들이 웃대가리에서 의장님 대접받을 때 
더러운 일 많이 당하고 풀뿌리 남은 사람들 여자들도 남자못지 않게 많다. 꼭 
이분법으로 말하고 싶지 않지만, 월드컵 축구이겨서 대한민국 국민인 거 
자랑스럽기 보다, 좀 다른 거 찾아보고 자랑스러워야 하지 않을까.. 나는 요즘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내가 느낀 감정과 지금 우리 나라 월드컵 열기를 보며 
외국인들이 느낄 감정을 생각해본다. 다른 얘기도 좀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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