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하루 종일 TV와 시청앞 광장을 왔다갔다 했다. 출근은 했지만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요즘은 언뜻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간 듯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내부로 스미는 것같다. 나 역시도... 어제 대학시절 편지를 내어 본 것은 그때 내가 꾸었던 꿈과 이상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내려다 보면 시청앞 광장이 보인다. 그날, 7시 50분 시청앞 광장이 열리자 덕수궁쪽의 사람들이 몰려왔고 오전 10시가 되자 그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찼다. 태평로 양쪽으로 폴리스 라인이 설치되고, 사람들은 차도로 올 수 없도록 되어 있었지만 곧 무너지고 말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딴에는 저 사람들을 뚫고 어떻게 영구차가 지나올까 걱정이 되었다.

 

예정된 시간을 넘겨 노제가 시작되었다. 몇몇 사람들이 노래를 불렀지만, 양희은의 노래는 온 세상을 울리는 것같았다. 끝내 이기리라.. 라고 하는 노래가 울려퍼질 때 가슴이 찡하면서 모두가 우는 듯했다. 도종환 시인이 마지막으로 외쳤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광장에 내려갔다가 또 회사로 올라와서 TV를 보다가 또 다시 내려갔다. 때는 두시 반 쯤 되었나. 행렬이 시작되었다. 애당초는 서울광장까지 행진을 한다고 했다. 남대문로쯤 갔을 때는 차량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YTN위에서 노란 종이가 내려왔다. 시민들이 그것을 보고 또 박수를 쳤다.

 

 

 

 

 

 

 

 

 

서울 광장앞에 도착한 행렬은 공사장을 사이에 두고 옆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명박 퇴진 구호를 외치기도 했지만, 군중 속에서 그러한 구호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야 말로 '순수한' 조문 행렬을 원한 사람이었을게다. 곧이어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연호가 시작되었다. 한참을 가다 보니, 영구차가 바로 내 옆에 있었다. 손을 내밀지 못했지만, 아쉽기만 했다.

 

너무 오래 시간을 비워, 곧 회사로 돌아오니 영구차는 사람들때문에 몇 백미터를 가지 못하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나서 6시가 다 되어서야 삼각지 부근에서 원효로로 빠졌다가 성남으로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날 역사의 현장은 그렇게 지나갔다. 아직도 나는 그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나의 나라에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요즘 또 다시 버스 장벽에 둘러쌓인 서울광장을 보며, 한탄을 금치 못한다.

 

나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태어났다. 10.26이후 학교 등교를 하면서, 내가 아주 어렸을 때임에도 불구하고 그날 대통령이 죽었다는 얘기에 울면서 학교를 간 기억이 있다. 그 이후, 최규하 대통령,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이렇다. 내가 대통령 선거권을 갖게 된 것은 물론 김대중 대통령이 대권에 도전하고 실패하여 정계은퇴선언을 했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나는 내 나름의 전략적 투표를 해서, 당선자를 찍은 적은 한번도 없다. 아니, 어쩌면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그를 찍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2002년에는 미국에 있어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었다 하더라도, 내 인생에서 보면... 전두환은 그래도 자신이 선거를 통해서 정권이양을 하겠다는 약속을 지켰고 양김씨의 분열로 노태우가 당선되었고, 좌절했다. 하지만 그때는 동서 냉전이 무너지고, 우리의 반공이데올로기도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이 된다. 91년 남한과 북한이 동시에 두개의 국가로 유엔에 가입하였다. 심각한 자기 중심적 사고를 지닌 김영삼 대통령이 되었을 때는 완전한 문민정부가 이루어지고, 87년의 충격에서 벗어나 민주화의 공고화를 이야기할 때였다. 그 이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다.. 내 삶의 역사에서 그래도, 후퇴는 없었다. 적어도 우리 정치체계는 모두가 싸웠고 그래서 우리 동시대인들이 쟁취한 민주화의 역사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그 정신에 대한 수구세력의 테러를 상징한다. 참을 수 없다. 사회에 대한 전망을 하는 사람들은 곧, HIT나 오늘 서울대교수 시국선언장에 몰려간 사람들의 예를 들며... 백색테러가 난무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도 그럴 가능성이 상당하다. 우리가.. 지금 멈추어, 절망하여, 좌절하여 싸움을 그만둔다면.. 사회는 9.11 이후 미국 사회가 그랬던 것처럼 정체를 잘 알지 못하는 공포의 시대로 접어들 지 모른다.

 

누군가는 조선시대를 얘기하고, 누구는 6.25를 얘기하고, 또 어떤 이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사회가 극심한 분열을 일으켰다고 한다. 언제가 되었건, 중요한 것은 반드시 우리 손으로 이러한 분열 양상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싸우자. 반드시.. 이겨내자. 지금은 국가권력보다는 때로 언론과, 막강한 시장권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듯할 때가 많아 싸움의 전선이 다양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테지만, 힘겨운 싸움이라 해도 하지 않을 수 없다. 반드시.. 끝내 이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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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일이지만 지난 한주 제대로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멍하게 있다가, 이게 왠 일인가, 안타까웠다가 화가 치밀었다가 괴롭고 미안한 마음이 컸다.

 

27일 아침 잠시 대한문 앞 줄이 짧아졌을 때 문상을 하며 일주일 중 처음 눈물이 났다. 뭘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눈물이 났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저 분이 왜 죽었다고 하는거야. 나는 노무현대통령의 절대적 지지자가 아니었다. 물론 그의 가치와 이상, 정책 방향같은 것에 이의가 있었던 적은 크게 없었지만, 너무 사회를 시끄럽게 하는 것에 대한 불만, 그 언어... 그게 너무 싫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마도, 나의 친인척들 영향때문인지 이모부 중에는 그와 중학교 동창에 동향인 사람도 있어서 너무나 나와 가깝게(?) 나와 같은 류의 사람으로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이 걸어온 길에 대한 관심을 덜 가졌는지도.

 

밤에는 서울광장을 찾았다가 미술관 앞 정동길에 몰려갔다. 한 두어시간 앉아있다가 온 것같다. 옆에는 40대 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앉아계셨다. 누군가는 음모론을 얘기한다. "그 영민한 분이 그럴 리 없어" 사람들은 누구나 믿지 않고 싶은 것이다. 돌아가셨다는 사실도, 그런 죽음의 방법을 택했다는 사실도. 나도 그렇다.. 다른 사람들이 다 가더라도, 나는 무의식중에 그 분을 그리 알고 있었나보다. 절대 포기하지 않고, 투쟁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끝까지 갈 것이라는 것. 그래서 절대.. 절대 그럴리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부산출신이다. 박연차나 강금원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들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들이 얼마나 힘겹게 기업활동을 해왔는지, 노무현대통령과 어떤 관계인지.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돈이 필요하니, 다른 정치인들과 똑같이 기업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아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 둘은 부산 기업계에서도 주류가 아니다. 한사람은 초등학교만 나왔다는 소문이 돌고, 한 사람은 전라도 출신이다. 그들의 공장이 있는 곳도 잘 안다. 그 곳의 기업들이 대기업은 아니란 것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부산 경제가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된 일. 90년대 초반에는 이미 산업기반이 없어지기 시작한 때, 그렇게 어렵게 기업하며 모든 돈을 노무현대통령에게 갖다 주었을 때에는... 그들이 기업하며 뼈아프게 느낀 비주류로서의 설움을 사회의 문제로 돌려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이 밤이 지나면 영결식이 시작된다는 생각에 늦게 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 일이 진짜인가.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제 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다만, 잊지는 말자. 너무 쉽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 다짐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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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다니는 나는 가만히 생각해본다. 회사에서 보기 쉬운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일을 하려고, 그것도 열심히 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어지간히 양식을 갖춘 사람인데, 아랫사람의 일을 하려고 한다. 자율성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 곳에서는 아랫사람이 일을 배우기 어렵다. 자기가 자율적으로 기획하고, 일을 추진하는 방법,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방법이 없다. 윗사람이 그렇게 자기의 일을 가져가버리니 아랫사람은 정말 그야 말로, 시다바리만 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의 행태를 가만히 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것. 그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생각해본다.

 

노무현대통령이 처음 손댄 것이 검찰개혁이었다. 정치검찰... 검사는 동일체로, 평검사부터 최고 위 검찰총장까지 '동일체'로서 권력에 복속되었다. 법조항만으로 안되면 그 좋은 머리 써가며 무리한 법리를 만들어내었다. 60년대에 만들어지고 한번도 적용된 적 없는 전기통신법 조항을 어떻게 찾아냈는지 참으로 신통한 것이.. 요즘 보는 일이다. 옛날에는 고문에도 가담했다.. "어이.. 이러면 안되지.." 말한마디 하면, 명확하게 고문을 지시한 바는 없지만 그들 세계에서는 통용되는 언어로서, 계장이나 직원들이 무지 막지하게 패고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평검사-법무부 왔다가 아니면 주요 권력기관에 파견갔다가- 서울 지검에 갔다가- 부부장-부장검사-차장검사-검사장.. 이어지는 그 승진은 아예, 애시당초 공안통이 아니면 어려웠다. 그것도 옛날얘기였는데, 이제 다시 소위 '공안통'들이 약진하는 세상이 되었다.

 

강금실 장관은 한 때 언론을 통해 송광수 검찰총장과 팔짱을 끼며 우리 사이좋다고 하는 것을 시위하기도 했지만, 도통 말을 듣지 않는 검찰때문에 너무나 힘들었고, 무서운 조직이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심지어 천정배 위원도 실패했다. 그렇다 해도.. 그 법무부와 검찰이라는 조직의 대척점에 서 있는 쪽과 함께 일하는 내 입장에서는, 지금과 그때는 정말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심지어 검사라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유하고 다른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며, 협력하려는 태도를 갖고 일했다. 그렇게 개인으로 봐서는 참.. 열심히 일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검찰이라는 조직이 얼마나 해괴한지, 이 정권이 들어서기 전, 권력이 그쪽에 갈 것이라는 예측을 하면서부터 서서히 변해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생각하는 것은 노무현이 정말 바보라서가 아니라, 그 이전 정권에세 너무나 검찰권력의 폐해가 크고 반드시 개혁을 하여 그 독립성을 지켜야만, 그래야만 이전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진정성이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아는데 왜 노무현이 몰랐겠는가. 권력을 유지하고, 자신이 하는 일을 쉽게 하자면 검찰과 국정원, 국세청 다 붙잡고 쥐어 흔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하면 조, 중, 동 쉽게 잡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그렇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못해서가 아니다. 강금실장관이나 천정배장관이 검찰을 완전히 개혁하지는 못했지만, 당시 자신들이 갖고 있던 인사권이라는 것만으로도, 검찰이라는 상명하복식 군대보다 더 군대같은 조직은 설설 기는 척이라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을 보아도,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데, 그것도 가장 초기 단계에서 그가 가진 권력을 휘둘렀다면 그가 검찰과 국세청만이라도 붙잡고 일을 해 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

 

그는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정말로 신봉했던 것같다. 주권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라는 아주아주 그 원칙적인 명제를. 그가 끝없이 권력을 내어주는 바람에.. 그는 모든 국민이 지나가는 개처럼 입에 올리는 존재가 되었지만 그것이 국민이 느끼는 자유와 자존감 그것의 반증이었다.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었던 것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렇게 될 수 있었다.

 

검찰에게는 독립성을 선물로 주려고 했다. 어떠한 권력에도 눈치보지 않고 엄정한 법집행을 통하여 국민의 사랑을 받고 신뢰를 받는 기관으로 변할 수 있는 기회를 노무현이 주었다. 아마도 검찰이 가진 유일한 기회였을 것이다. 이제 누구도 그러한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다. 검찰은 그러한 독립성을 줘도 받을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이제는 그런 자격도 없다. 그들은 검찰의 독립성을 이루어낼 기회를 차버렸다. 어쩌면, 그렇게도 일순간에 변해버렸을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 조직이라는 것이 그런 것인지. 어쩌면 그렇게 정치권력에 민감하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살다보니, 그렇게 한결같이 검사들이 나와 정치를 하는 것인지. 그것도 꼭 집권여당에 몰려서... 헌법적 가치, 인권보다는 다들 국가(마치 전체주의에서 칭하는 국가처럼)와 법질서, 공공질서 이런 얘기만 해대며... 정치를 하는 것인지. 참으로 혐오스러운 집단이다.

전에는 이 정도로 싫지는 않았다. 그저 집단의 논리가 그렇거니, 그래도 소신있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는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검사동일체니(이 법조항도 바꾸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렇게 받아들이는 듯)... 위에서 아래까지 다 싫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혐오스럽고, 저질스럽고, 홀로 서라해도 싫다고 떼쓰는 성장하지 못하며 유치한 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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