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헤어질 땐

서로 가는 곳을 말하지 말자


너에게는 나를 떠나버릴 힘만을

나에게는 그걸 노래부를 힘만을


눈이 왔다, 열한시

펑펑 눈이 왔다, 열한시


창밖에는 상록수들 눈에 덮이고

무엇보다도 희고 아름다운 밤

거기에 내 검은 머리를 들이밀리


눈이 왔다, 열두시

눈이 왔다 모든 소리들

입다물었다, 열두시


너의 일생에 이처럼 고요한 헤어짐이 있었나 보라

자물쇠 소리를 내지 말아라

열어두자 이 고요 속에 우리의 헤어짐을


한시

어디 돌이킬 수 없는 길 가는 청춘을 낭비할 만큼 부유한자 있으리오

어디 이 청춘의 한 모퉁이를 종종 걸음칠 만큼 가난한 자 있으리오

조용하다 지금 모든 것은


두시 두시

말해보라 무엇인가 무엇인가 되고 싶은 너를

밤새 오는 눈, 그것을 맞는 길

그리고 등을 잡고 섰는 나

말해보라 무엇인가 새로 되고 싶은 너를


이 헤어짐이 우리를 저 다른 바깥

저 단단한 떠남으로 만들지 않겠는가

단단함

마음 끊어 끌어낸...


너에게는 떠나버릴 힘만을

나에게는 노래부를 힘만을


-시집 "황동규 시선집"(문학과 지성사)에서

 

 

이 아저씨는 "내 그대를 생각함은..."이라 시작되는 시를 통해 잘 알려진.. 시인. 시집을 보면 그런 말랑 말랑한 시를 쓰는 사람이라고만은 볼 수 없음에도 시인이라면 그렇게 대중적으로 회자되는 시가 한편쯤은 있는 것도 좋겠다 싶다. 테니슨의 친구에 대한 헌사가 마치... 연애시인양 알려진 것처럼이라도. 잊혀지는 것보다, 읽히지 않는 것보다는 백배 낫지 않을까.

 

무엇이 되고 싶은 너.. 무엇인가 되고 싶은 나. 사랑받고 인정받고.. 사랑하는 자에게 의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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