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아홉기둥"은 국가인권위원회 안경환 위원장이 재임중 펴낸 역서이다. 원저는 미국의 저명한 언론가, 밥 우드워드가 펴낸 책으로 생각보다 얇은 책인데, 역서는 몹시 두껍다. 약 1000페이 정도에 달하는 번역서는 정가 45,000원이 되어서 책한권에 너무 비싼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래도 꼭 읽어보고 싶었던 내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이 책을 어떻게 구해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미국대법원 1969년 워렌대법관 말기부터 76년 렌퀴스트 대법원장으로 이어지는 시기의 대법원 내 주요 사건의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대법관 개개인에 대한 평가와 함께 그들간의 개인적 역학관계 때문에 주심을 맡은 판사가 어떻게 합의를 도출해내고, 최종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의 결정을 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오늘 뉴스에 서울시의회에 가서 견학한 초등학교 아이들이 저 사람들이 코미디언같다고 했다는 것을 보았다. 예전 강금실 장관이 국회에서 국회의원들하는 행태를 보고 "코미디야, 코미디"라고 했다가 논란이 되었던 기억도 난다. 아마도 다른 기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동네에서는, 우리나라 어느 곳이라도 아마도 코메디같은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토론문화가 성숙하지 않았고, 여전히 좌우, 분열적인 사회 양태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며, 결국에는 우리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나타나고 있을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대외적으로 의견을 발표하는 경우는 '의견표명'이나 '권고'라는 형식을 취한다. 그러한 의견은 전원위원회나 상임위원회나 소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대외로 발표되는데, 중요한 사안은 주로 11명의 위원이 위원이 동일한 권위와 결정력을 행사하는 전원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위원은 예로부터 대통령이 지명하는 4인의 위원, 이 중에 위원장과 1명의 상임위원이 있고, 야당이 2명, 여당이 2명, 대법원장이 3명을 지명한다. 여기에서는 위원장 또한 회의를 진행하는 역할을 담당할 뿐, 자신의 개인적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어떠한 행위도 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위원회 내에서는 가끔 자조적으로 봉숭아학당이라는 평가도 있는 것이, 논의의 수준이 떨어지고, 가끔은 본질에서 벗어나는 얘기도 나오며, 또 가끔은 위원의 결정 기준이 인권이 아니라, 정치적 고려나 여론이나 눈치보기이라는 생각도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안경환 위원장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위원회 내에서 한 건이 결정이 되면 주심위원을 지정하고, 또 주요 사업에서는 그 사업을 담당하는 위원을 지정하는 등, 많은 부분의 권한이양을 했다. 때로 사무처에서 작성해 올리는 안건에 대해 강력하게 밀어붙인다면 의사결정이 빨리 이루어지거나, 더욱 강한 톤으로 나갈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번 순연이 되면, 2주가 더 소요되고, 위원회로서는 더 생생한 적시의 의견을 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간혹 있었을 지 모르겠다.

 

오늘 프레시안에 곽노현 교수가 쓴 글처럼 안경환 위원장은 전혀 진보나 보수같은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아마 당신도 그런 수식을 거부하실 것이다. 차라리 낭만주의자라 할까 문인이라할까... 그런 색채가 짙다. 오히려 사람의 존재와 역설, 인간에 대한 관심이 많은 분이고, 예술에도 조예가 깊은, 감수성의 사람이다. 초창기에는 위원회 내 진보적인 직원들에게는 의구심의 눈초리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에 오늘의 이임사와 같은 비판의 소리는 외부에서 오죽했겠나 하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여하간 미국의 연방대법원 9명의 대법관들처럼, 인권에 대한 토론과 판단을 해야 하는 국가인권위원회 11인의 위원들은 아쉽게도 대법관들에게 비견할만큼 지적이거나 열의에 가득차다거나 아니면 정말 인권적 가치에 전념하지 못했다. 인권위원들에게 요구되는 요소가 여러가지가 있었다면, 모두를 골고루 갖춘 사람들부터 하나도 갖지 못한 사람까지.. 그런 사람들의 집합체 정도가 국가인권위원회위원들이라고 본다.

 

안위원장이 펴낸 책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그런 정도의 수준이 되길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의사진행방식이나, 결정하는 방식이나.. 아마도 당신의 의견이 강했을 때에도 그것을 먼저 드러내지 않고 가끔은 서로 상이한 위원들간의 토론을 통해 무언가 합의를 이루어내는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었는지. 그런 이상을 가졌던 것은 아닌가 나는 추측한다.

 

책은 재미있다. 지적이고, 생생하게 대표적인 미연방대법원의 판결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를 볼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회의도 재미있다. 코미디 수준처럼... 그래도 싸움박질은 하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오늘은 하고픈 말이 많았으나, 하지 못했고 여기 이렇게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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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나는 대한민국 인권에 관한 담론이 매우 해괴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상의 계보에 대해 집착하는 성향을 보이는 나는, 인권이라고 하는 지극히 근대자유주의적 담론이 어째서 좌파와 연계되어 있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들의 무식함을 탓할 수 밖에.

 

또 하나.. 권리라고 하는 개념은 그에 상응하는 권리보장의 의무가 있기 마련인데, 이 나라에서 매우 흔히 접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이익, 욕구, 거의 모든 것을 권리로 포장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볼 때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그것을 보장할 주체가 누구인가를 분별하는 것이 실제 권리보장에 있어서는 중요한 문제임에도 주장만 난무하게 되고, 법적 의무를 진 자에 대해 망각하게 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아무리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라 해도, 인권이라면 그것을 보장할 의무란 단순히 도덕의 차원이나 배려의 차원을 넘어서는 정언명령의 의무를 수반해야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인권을 매우 soft한 언설에 불과한 상태로 위치시키고 만다.

 

각설하고, 그렇게 불만스러웠으나 그것은 우리나라의 사상적 배경, 정치사회적 변동에 따른 결과라는 점도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결국 나의 직장이라는 것도...

 

그 직장이 이제 설립 이후 최고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직장때문에 도매급으로 '좌빨'로 몰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단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빨갱이로 몰아버리는 이 사회가 매우 혐오스럽다. 남의 사상에 대해 검증서를 마구 써내려가고 그것에 기초하여 기소한다는 위험한 발상, 기본적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남의 얘기, 사상에 대해 재단해버리는 이 사회가 매우 저열하다고 생각한다. 공포의 정치.. 편을 가르고 싸우고 이겨야 하는 우리 정치경험이 집단적 공포로 남아있기 때문일테지만, 새로운 세대는 그러한 것을 극복할 책임이 있다.

 

며칠 전에 회사 게시판에 썼지만, 우파 독립장군 드골이, 좌파 철학자 사회참여형 지식인 사르트르에 대하여 흔쾌히 "나도 프랑스이고 그도 프랑스이다. 놔둬라"라고 말하여 사르트르는 체포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하는 일화에 대해서.. 그 정치 풍토와 드골의 인품에 대해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의 좌와 우를 넘어서면, 우파가 좋아하는 그저 '대한민국' 어떠한 정체성을 지닌 한 민족 국가의 정체성 속에 다양함과 포용력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다르다면 아니 빨갱이가 하는 소리와 가깝다면 어디서 태어난 것이든 효과가 무엇이든 다 싹을 자르고 봐야 하는가.

 

생물학적으로도 동종교배가 강한 힘을 갖지 못하듯이, 일찍이 사상의 자유시장을 역설한 아레오파지티카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똑같은 자들이 살아남는다면.. 결국은 공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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