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2년 대통령선거가 한창일 때 나는 유학중이었다. 외부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 국민들의 감정적 투표 행태, 어느날 갑자기 유치한 정몽준이 지지를 철회한다는 얘기를 하자, 밤새 투표를 독려하고 갑자기 유의미한 정도의 표가 노무현에게 갔다는 것은 차치하고서도, 정치계에서 그렇게 검증되지도 않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위험한 선택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2. 대중적 인기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여론이라는 것은 조작하기도 쉽다. 단어 하나에 미치는 어감 같은 것, 이런 것은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몇 번 다루어진 얘기일 뿐더러, 정치커뮤니케이션 같은 데서는 아주 고전적인 얘기들이다. 말하자면 대통령 후보가 TV토론에 나갈 때는 붉은 색 타이를 하는 것이 좋다든지, 투표 번호는 1번이 좋다든지 하는 류의 분석들이 있어 그것을 금과옥조처럼 따르고, 간혹 여론의 향방이 불리할 때는 사건을 만들어 물타기를 해버리는 것도 내가 예전 공부했던 분야에서는 아주 고전적이라 누구든지 알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너도 나도 다 쓰는 방법이었다. 여하간 여론이라고 하는 것은, 현대 민주사회의 전제인 이성적 인간들의 합의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정체에서 합리적 인간들이 판단하는 의견의 집합 정도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외려 심각하게 조작될 수 있고 한 두개 수틀린 무언가 아주 별 것도 아닌 것들 때문에 부정적으로 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그렇게 노무현에게 쏠려가던 사람들의 희망과 때로 무비판적으로 보이던 지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마치 미국에서 고어가 모든 것을 갖추었으나 너무나 엘리트적인 이미지 때문에, 차가워 보여, 자기들과 동떨어진 듯해서 대선에서 패배했다는 분석이 많았던 것처럼, 이회창이 딱 그런 이미지여서, 이 나라에서는 고대생도 국회의원을 하느냐는 투의 얘기를 했다고 해서, 우리나라 대법관 중 법리로서는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이회창이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 한편, 좀 정이 가지 않아도 합리적이고, 헌법적 가치에 대한 이해도 있는 사람인 이회창이 되면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의 그 시끄러운 일들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던 것이다.

 

3. 얼마간 나라가 돌아가는 양태가 하도 희한해서, 나는 나라를 떠나고 싶을만큼 절망했다. 그래도 한편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거나 급진적인 사람들은 여전히 다수이고, 우리 국민들은 가치에 대해서나 전통적인 정치, 무언가 공적인 소구에 감흥하지는 않아도, 자신의 이익과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한 행동을 하기는 한다는 생각을 작년 FTA협상, 광우병, 촛불시위 정국에서 보았기 때문에 희망을 생각했다. 간혹 농담처럼 이 나라에서 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건지 난 모르겠어 라고 했지만, 어쩌면 국민들은 그것보다는 더 부드럽게 생활속의 민주화를 이루어갈 저력은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4. 각설하고 노무현 정부의 최고 실패는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도덕적 가치, 이상을 얘기하고 그것에 자기의 정치적 기반을 두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386의 이상이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하고 일을 풀어나가는 방식에서, 이상을 현실에 구현하는 방식에서 아마츄어리즘을 드러내고,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킨 면도 분명히 있다고 본다. 대통령이란 헌법적으로 보아도 행정부의 수장이고 국가원수이니, 행정 전문가의 얘기도 듣고 사회합의를 이끌어내는 방법에서 우리가 옳다고 얘기할 것이 아니라, 때로 아주 가치중립적으로 보이는 '효율성'같은 것을 얘기했다면 어떠했을까. 또 정치적으로 더 유연했다면 어땠을까. 마키아벨리가 주창하는 바처럼 목적을 위하여 간악한듯 보이는 계교도 한번 부려보았다면 어땠을까. 정권의 기반을 도덕성에 두고 있었으니, 어떻게 법리로 싸우면 범죄가 되지도 않았을지 모를 그 사람이..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자기가 놓은 전제를 부정하게 되는 일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5. 46년 생.. 60이 겨우 넘은 나이. 아무 것도 없는 삶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가 싸워온 것은 반대로 지금 그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들이 되었을 것이다. 싸울 힘을 주기도 했고, 이제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했고.. 그 개인의 힘겨운 삶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오늘은 하루 종일 여러가지 생각이 많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견고했다. 그 적군이. 지금 내가 우리 나라 상황에서 느끼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그들이 원하는 일이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외려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이라는 것.

 

6. 오전 9시 40분.. 돌아가셨다는 첫 소식을 동생의 전화를 통해 알았다. 그 후 하루 종일 마음이 무겁고, 어떻게 표현하지를 못하겠다. 한편 내가 검찰과 우리 사회 지배계층의 가치와 연줄망에 대해, 또 우리 국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어떻게 대했던가, 내가 그를 어떻게 비판하고 평가했던가.. 여러가지를 생각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슬픔과 애통함을, 괴로움을... 검찰에 소환된 3번째 대통령이라고 하며 전두환, 노무현과 같은 선에 두는 그 객관적인 듯 보이는 언설을, 죽어라.. 라는 얘기를 들먹이는 지식인, 끝없이 그를 조롱했던 언론, 색으로 편가르고 싸움으로 대응하는 우리 정치 문화.... 모든 것을 하나의 글에 담아내기는 어렵다. 가능하다면 계속 쓸 것이다. 내 속이 좀 풀릴 때까지. 이 분노와 슬픔과 좌절을 좀 풀어낼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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