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다다른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어느 죽음만큼
이 세상의 길이 아득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번씩 귀를 달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 쪽으로 뻗어간다.
그러나 굽이굽이 삶은 길을 에돌아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고 서서 견디노라면
먼산이 너무 가깝다.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꽉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무덤으로 받는 것을.
끝까지 참은 뒤
죽음은 이 세상의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지난 여름의 부용꽃인 듯
어쩌면 가장 겸허한 정의인 듯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은 다음 우리 모두 다 덮을 수 있겠느냐.
고은의 시. 문의는 충북 청원군의 마을로 지금은 대청댐으로 가라앉았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어제는 입동이라했다. 그래서인지 추워졌다. 겸허한 정의란 무슨 뜻일까.. 궁금하다. 모든 것은 낮아서.. 라는 말이 마음에 든다. 낮은 곳.. 낮은 자.
어릴 때 내가 참 보기 싫어하던 어른들이 있었다. 저 사람들.. 이 소중한 인생을 왜 저꼴로 사는가. 목적없이 미친듯이, 돈벌고 이기고, 빼앗고, 악쓰는데 생을 낭비하는 사람들.
언제부터였는지 모른다. 정확히 기억하기는 3년전까지는 이런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듯이 스탑을 외치는 내 마음 속의 소리와는 상관없이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마치 가질 수 있을 것처럼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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