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요즘의 우울함을 어깨에 딱 달라붙은 등껍질처럼 지고,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로 가서 투란도트를 봤다.

 

말그대로 얼음공주 투란도트와 사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류. 어쩐지 둘다 소프라노같다.. 음색이 딱히 구분되지 않는다 생각했더니, 둘다 소프라노의 배역이었다. 보통의 오페라는 여자소프라노 주인공과 메조소프라노의 조역, 혹은 투란도트같은 위엄을 갖춘 역에는 메조를 쓰는데 이 역은 달랐다. 그러니까 굳이 소프라노로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마도, 투란도트가 어린, 남성혐오증을 가진 공주였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가 방점을 두고자 했던 것은 투란도트의 공주로서의 위엄같은 것보다는 혐오증과 두려움, 그리고 결국에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여성으로서의 변모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대척점에 둔 하인 류의 경우..

 

류가 죽은 후에 이어지는 투란도트와 왕자의 사랑의 아리아는 어쩐지 맥빠진 사족같이 느껴졌다. 아마도 그것은 해피앤딩으로 끝나는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류의 죽음에서 듣게 되는 3중창과 합창이 너무나 장대하고 감정적으로는 거의 피날레에 해당한다고 느꼈기 때문일것이다. 역시 이 부분까지가, 푸치니가 죽기 전에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  이 곡이 끝난 후 아마도, 타무르의 대사였던 것같은데, The Offended sprilt will have revenge라고 하였다. 갑자기 그것이 마음에 박혔다. 내 상태가 그런가? 뭐 나야 복수할 것이 뭐있나. 복수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서도..

 

투란도트의 세가지 수수께끼

 

첫번째 수수께끼
공주: 그것은 어두운 밤을 가르며 무지개 빛으로 날아다니는 환상. 모두가 갈망하는 환상.그것은 밤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아침이 되면 죽는다.
왕자: 그것은 '희망 (La Sprenza)’

번째 수수께끼
공주: 불꽃을 닮았으나 불꽃은 아니며, 생명을 잃으면 차가워지고, 정복을 꿈꾸면 타오르고, 색은 석양처럼 빨갛다.
왕자: 그것은 ' (Il Sangue)’

번째 수수께끼
공주: 그대에게 불을 주며 불을 얼게 하는 얼음. 이것이 그대에게 자유를 허락하면 이것은 그대를 노예로 만들고, 이것이 그대를 노예로 인정하면 그대는 왕이 된다.
왕자: 그것은 바로 당신, '투란도트 (Turandot)!’

 

 

그녀의 수수께끼는 가만 보면 언뜻 세상사를 많이 아는 사람이나 물을 수 있는 것처럼도 보이는데, 나름의 정신분석학, 여성학, 철학적 알레고리를 만들어 보려해도 쉽지는 않다. 그래.. 다른 오페라들처럼 그저 부르조아 사랑얘기로 낭만의 극치로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생각한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생각보다 무대가 작다. 아무튼 이번 공연은 내 판단에는 소프라노, 특히 투란도트 역의 소프라노는 그 역할에는 사실 카리스마나 연기가 조금 떨어지는 듯했고, 음악감독보다 미술감독을 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굉장히 모던한 무대와 의상이 그나마 흥미로웠던 공연.

 

.. 류가 죽을 때 사실 눈물이 났다. 그 여자 노예가 어느날 하루 우연히 자기를 보고 웃어준 왕자를 사랑해서 그의 사랑을 완성시켜주기 위해 몸을 던지는 이 신파같은 얘기에.. 눈물이 났다. 사실 그렇다.. 그 웃음이 얼마나 눈부셨을까. 그 생각을 하니 괜시리 감상적이 되었다. 오늘도 훌륭한 네이버에서 그 아리아를 듣는다. 마지막.. 그녀의 죽음의 아리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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