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아주 늦은, 혹은 이른 시각.. 새벽 다섯시를 막 넘겼다. 온 동네
까발리고 다닐 일이 절대 아니지만, 지난 몇 주간 죽음과 같은 '우울증'에
걸렸었다. 지금은 괜찮은지… 사실은 잘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방안에 앉아서
갑자기 책상 아래 들어가면 편안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순간 무서워져서
관둬야겠다 싶었다. 이거 정말 관둬야 한다. 나는 나이 서른 줄 들어서면서
더욱 명확해진 것은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정말 한순간이라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 이대로 나를 방치하다가는 정말 큰일나겠다
싶어서, 떨어지면 다시 기어오르는게 너무나 오랜 시간, 큰 노력이
필요한거니까. 사실은 여전히 세상살이가 재미없다. 나는 인생의 가치를
'재미'에 절대 두지 않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는게 '재미가 없다'. 모든
사람의 인생이 너무 빤해 보인단 말이다.. 왜 사는지 모르고, 아파트 사고 돈
벌고.. 그러다 죽는 인생살이의 챗바퀴 속으로 친구들이 하나씩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나라고 뭐 그러지 않겠나 싶은게 사실은 더 견디기가 힘든 일이다.
그리고.. 갈수록 이 인생살이 끝까지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만
가득해진다. 여자야 원래 나와 같은 족속이라는 사실을 잘 알아서, 여자의 삶에
대한 연민은, 달리 정치적으로 표현하자면 페미니스트로서의 자각은 이미
고등학교 이전부터 있었던 것같으나 남자라는 존재를 '인간'의 범주에 넣기
시작한지는 사실 얼마되지 않았다. '남자'는 그냥 남자였지.. 그래서 남자는
이렇고 저렇고 하는 선에서 지식을 쌓아갔을 뿐.. 그들이 이해되었던 적은
없었던 것같다. 그리고.. 세상에 괜찮은 남자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조금이나마
하게 되었던 때는 3-4년밖에 안된 일이다. 남자가 사람이구나.. 그걸 가슴 속에
느끼게 된게.. 요즘 내 주변 모든 여자들의 공통적인 화제는 '남자를 만나는
것'에서 부터 좀더 구체적으로 '남자와 섹스를 잘하는 법'까지 .. 결국에는
누군가와의 관계성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그득하다는 얘기겠지만 너무나
다양해서, 사실 그들과 각개 격파식의 '수다'-나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
학교에서 제일 폭넓게 사람들과 얘기를 하는 편이라 볼 수 있지만-를 통해서
배우는 것들.. 관찰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여하간.. 아무래도 나의 정서는
어딘지 80년대 중반학번들과 90년대 중반학번까지 대략 10년의 세월을 왔다갔다
하는 듯. 여기 같이 공부하는 85학번 언니.. 왕수다장이.. 얘기를 혼자서
했다하면 몇 시간이고 끝나지 않고 혼자 얼마나 쓸쓸할까 하는 마음에 전화라도
했다 하면 결국은 내 기가 다 빠져나감을 느끼고 결국 전화를 끊게 되는 그런
언니. 그 언니 기자 시절 단골 술집 마담얘기에서 사실 나는 많은 공감을
느꼈다. "20대는 그냥 정신이 없었고 30대는 가는 세월이, 이제 내 젊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모든게 그리도 안타까웠고 40대가 되니 남자를 인간으로,
그냥 사람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더라." 근데.. 지금 사실은 내가 그
마담언니의 말을 이해할 것같단 말이다.
나는 올해 들어 가까운 '한국남자' 둘의 죽음을 접했다. 힘든 일이었다. 50대 중반과 막 60대 들어선 한국 남자. 한분은 뇌출혈로 돌아가셨고, 또 한분은 영양실조로 인한 폐렴 증세로 결국 돌아가셨다. 그 영양실조로 돌아가신 분.. 그 분의 직업이 비난받는 '의사'이다. 돈많이 벌었냐구.. 내 알기로 많이 벌지 못한 건 아니지만
일반인들이 생각하듯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다. 결국 입원해계시다 종반에는
"나 더 살고 싶지 않다"하며 음식을 거부하셨고, 영양실조가 왔고.. 그리고
돌아가셨다. 딸 셋중에 딱 하나 시집보내고 둘 남고, 아들 하나.. 아직
대학생이고.. 남겨놓은 재산도 별로 없다…. 결국에 한국 남자들 참 불쌍하게
산다. 그리 살지 말라 그래도 자기도 어쩔 수 없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성질 다 죽이고 그렇게 사는 거.. 그게 이제 이해가 되니까, 막연히 밉게
보이던 어릴 적 관점에서 보다가 지금에서.. 이제껏 살면서 보니까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 이해가 된고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시린다.-그렇다고 여자가 덜 불쌍하다 이건 절대 아니다(혹 내 뜻을
곡해할까봐) 나이가 서른쯤 되고, 사회의 주역이라는 자각이 생기고, 더 이상
젊어서 용기백배할 수 없고, 몸을 사리기 시작하는 그런 때.. 이제는 사랑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내 인생의 기적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다시 오는
사랑이 그래서 더 안타까운 때. 키가 어떻고 돈벌이가 어떻고 이런 조건들 다
차치하고, 이제는 그 사람 살아가는 그 삶이 마음에 무겁게 느껴져서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마담 언니 말처럼.. 그리 살아가는 인생들이 어느날
그 술집에 들러 술한잔 하고 그 언니랑 얘기하고 돌아가는 것이 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그 마음 알 것같다. 어쩌면 나도 이제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에 나 이제 사람을 깊이 신뢰하지 못하는 마음의 벽을 높이
쌓았지만, 그것은 달리 말하면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 한발자욱 더
땅아래로 내려왔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이다. 내 마음 열어 모든 내 상처와
추잡함을, 또 한편 나의 이상과 생각들을 다 알고 이해해주길 바라는, 어느
정도 공유해주길 바라는 그런 사랑 아니라 그저.. 이런 세상 살아가는 내
인생이, 네 인생이 불쌍해서 우리 가끔은 서로 보듬어 주며 살자 싶은.. 그게
어떠한 지속성을 갖는 관계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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