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이라는 소설가는 밥벌이에 대해 에세이를 썼다지. 그의 머리속에는 그래도, 밥벌이는 지겨울지라도, 비루할지라도 먹고 사는 생존의 본능처럼 성스러운 것은 없다는 생각이 있는 듯하다.

 

직장을 옮긴지 이제 두 달이 되어간다. 요행히도 1일자 발령이 되는 덕에 한달치 월급을 받고, 어제 두번째 월급을 받았다.

 

지난 번 직장을 떠날 때, 단체쪽 사람들 몇은 내게 직접 대 놓고, "사람의 인생이란 죽을 때 되어봐야 아는 것아니겠어요. 한번 두고 보지요"라고 했고, 또 "실망했어요"라고 했다. 또 몇몇 아는 사람들은 빨리 그곳을 나오라는 메세지를 보냈다. 물론, 몇몇은 축하해주기도 했다.

 

오늘은 이 달 말에 예정되어 있는 이사를 위해, 은행에 가서 돈을 빌렸다. 그 과정에 좀 문제가 있어서 집주인에게 연락하고, 부동산에 연락해서 일을 해달라고 하는 과정에서 매우 불친절한 언사를 하는 것을 경험했다. 대체 이 인간이 뭘 믿고 이따위야.. 라는 생각을 하게끔 하는.. 하기야, 그 내면에는 아마도 네가 감히 내가 누구인줄 알고, 하는 생각이 있었을지 모른다. 권력이 있거나, 권력에 가깝다는 것은 참으로 사람을 경망스럽게 할 염려가 있다.

 

여하간 직장을 옮긴 단순한 이유는, 아마도 내 직장이 내가 가진 애정만큼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 게다가 내 직장에서는 승진도 어렵고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기 때문일거다.

무슨 제대로 된 목적을 위해 일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 정당성과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때문에 우리가 생활인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일한 것에 대하여 보상을 받고 싶고, 좋은 사람들과 일하며 많이 배우고 싶고 일을 잘하고 싶고.. 그런 욕망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가끔 사소한 것으로 치부한다.

내 생각에는 그런 판단은 외부에서 더 하기 때문에 아주 쉽게는 공직을 맡은 사람은 그 사람에게 그 보수가 정당한 노동을 제공하고 받는 보수라는 생각보다는 그저 사회에 봉사하여야 한다고, 그렇기 때문에 밤 늦은 시각까지 강한 노동과 열악한 노동조건과 적은 급여를 그저 감내하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드러나는 모든 문제들과 실제 그들의 근로조건과는 별 연관이 없는데, 그런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니네들은 누릴 것은 다 누리지 않느냐라고 한다.

그렇지만, 급여가 높지 않고 근로조건이 좋지 않은 곳에는 혁신적 사고가 나오기 어렵고, 고객은 제대로 서비스를 받기 어렵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그런 곳에는 인재가 몰리지 않고 피해는 결국 그 혜택을 봐야 할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여하한 나는 더 나은 밥벌이를 위해서, 일을 조금이라도 기능적으로라도 잘하는 조직을 택해서 다행히 날로 악화되어 가는 회사에서 탈출을 했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진정성에는 아무 관심없는 자들에게서, 비난을 받고 할일없는 자들의 수다거리가 되었다. 그들은 자기 삶에 대해서, 밥벌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우기고 싶다. 지고한 이념이라는 것보다는 생존과,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가 있는 편이 인간답다고. 외려, 고상한 가치보다는 생존에 관한 것이 인간에게는 절대적 의미를 지닌 어떤 유일한 조건일지 모른다는 것.

 

밥벌이는 지겹다. 여자.. 손과 발에 뭔가 묻히며 힘들게 사는 여자 많은데 넌 왜 마님같이 살려고 하냐는 엉뚱한 소리도 들었지만, 나는 내 먹을 것을 벌기 위해 오늘도 야밤까지 대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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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와호역에서 약 30분 정도 기차를 타고 아키타쪽으로 더 들어가면 카쿠노다테라고 하는 도시가 나온다. 이 곳은 동북지방(아키타, 아오모리 등의 지역)의 교토라고 불리는 곳으로 예전 막부들의 저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아주 높은 삼나무, 그 나무로 지은 집들, 복도가 없이 다다미로 이어진 방...

 

그리고 근대화 시기 외국 회화의 영향, 복장의 변천, 그리고 그들이 축적한 부를 통해 모으기 시작한 축음기, 음반, 시계, 카메라가 전시되어 있고..

 

또 하나, 우리 눈에 익은 근대 군인들의 복장이 전시되어 있다.

 

거리가 매우 고풍스러웠다. 깨끗하고.. 군데 군데 오래된 집에서 아직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유럽 오래된 곳에, 외부는 그대로 보수 유지하면서, 내부는 개조해서 아직도 사람들이 살아가듯이 일본에도 그런 마을이 남아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 부럽다. 단지 민속촌과 같은 곳에, 그저 눈가리고 아웅하듯이 풍속을 보여주는 사람들만 왔다갔다 하고 밤이 되면 텅 비어버리는 그런 곳이 아니라 아직 사람이 살고 가꾸는 그런 집이, 마을이 남아있다는 것.

 

카쿠노다테의 하천의 양 옆은 수킬로미터 이어지는 수백년된 벚나무천지다. 봄이 되면.. 그 풍경이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다시 가 보고 싶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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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키타현의 유명한 다자와호수.. 일본어로 다자와코가 된다. 이 호수는 일본에서 수심이 제일 깊다던가. 400미터가 넘는데 그 둘레는 약 20킬로미터이다. 이 호수의 절반을 걸었다.

호수는 화산폭발이후 형성된 칼데라호라고 한다.

 

이 호수의 전설과 관련된 것이 바로, 금으로 만들어진 여자의 동상이다. 그 주변에는 맑은 물속에 물고기가 퍼덕거린다.

 

다자와호수 둘레는 걷는 길은, 때로 차와 같이 걸어가고 호수와 멀어지기도 했지만 무척이나 아늑하고 좋은 호수둘레길이다. 작녀부터인가.. 많이 걷고 있다. 호수 어느곳에는 사람이 없이 약간의 모래턱같은 것이 생겨서 거기서 몰래 수영을 해도 괜찮을 정도이다.

 

맑고 아름다운 호수. 파랬던 호수. 퍼덕이는 물고기들. 뙤약볕. 좋은 휴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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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년.. 몇 년만에, 아니 어쩌면 평생에 처음으로 휴가같은 휴가를 갔다.

일본 다자와호라는 곳 근처에 가서 택한 숙소 유뽀뽀 산장. 이 산장은 다자와호 근처 여행정보를 찾다가 네이버 어느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보고 알게 되었다.

 

일본의 숙박시설은 일인당 금액으로 계산하는데다가, 온천같은 곳은 식사비까지 포함되니까 금액이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게다가 보통 온천에 가면 '가이세키 요리'라는 연회요리가 나오는데, 양도 많고 굳이 매일을 그런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고, 그래서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산장 할아버지의 음식솜씨가 좋아서 좋은 공기에 산속에 자란 버섯과 야채를  주로 한 음식을 맛깔스럽고 정갈하게 내온다. 아침과 저녁을 주니, 정말 싸게 여행한 셈이다.

 

 

유뽀뽀 산장은 1층과 2층 방이 여덟개쯤있다고 한다. 1층에는 식당, 남녀 유황온천탕이 있다. 2층에는 내가 사용한 방 포함, 3개 정도의 다다미 방이 있다.


 

 

내가 잔 다다미방. 문을 제대로 잠그지도 않는다. 여하간 이 곳에서 푹신한 자리를 깔고 덮고.... 푹 잤다. 창문을 열고 잤는데, 주변에 냇물 흐르는 소리와 아침에 새소리.. 그 정도의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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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경대학교에서 아시아 국제법학회가 개최되었다. 학회 규정 때문에 내가 발표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제출된 페이퍼에 기여한 것을 인정받아 초청을 받았다.

 

동경대학교 강당은 68혁명의 마지막, 학생들의 투쟁 과정에서 동경대 강당, 야스다 강당이 불타버려 결국 그 운동의 급진성에 대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결국 일본 내 좌파 학생운동의 몰락을 불러일으킨 사건을 상징한다.

 

96년 연세대학교 종합관에서 소위 한총련 사태라는 것이 발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그 사건을 떠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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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아홉기둥"은 국가인권위원회 안경환 위원장이 재임중 펴낸 역서이다. 원저는 미국의 저명한 언론가, 밥 우드워드가 펴낸 책으로 생각보다 얇은 책인데, 역서는 몹시 두껍다. 약 1000페이 정도에 달하는 번역서는 정가 45,000원이 되어서 책한권에 너무 비싼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래도 꼭 읽어보고 싶었던 내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이 책을 어떻게 구해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미국대법원 1969년 워렌대법관 말기부터 76년 렌퀴스트 대법원장으로 이어지는 시기의 대법원 내 주요 사건의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대법관 개개인에 대한 평가와 함께 그들간의 개인적 역학관계 때문에 주심을 맡은 판사가 어떻게 합의를 도출해내고, 최종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의 결정을 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오늘 뉴스에 서울시의회에 가서 견학한 초등학교 아이들이 저 사람들이 코미디언같다고 했다는 것을 보았다. 예전 강금실 장관이 국회에서 국회의원들하는 행태를 보고 "코미디야, 코미디"라고 했다가 논란이 되었던 기억도 난다. 아마도 다른 기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동네에서는, 우리나라 어느 곳이라도 아마도 코메디같은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토론문화가 성숙하지 않았고, 여전히 좌우, 분열적인 사회 양태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며, 결국에는 우리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나타나고 있을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대외적으로 의견을 발표하는 경우는 '의견표명'이나 '권고'라는 형식을 취한다. 그러한 의견은 전원위원회나 상임위원회나 소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대외로 발표되는데, 중요한 사안은 주로 11명의 위원이 위원이 동일한 권위와 결정력을 행사하는 전원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위원은 예로부터 대통령이 지명하는 4인의 위원, 이 중에 위원장과 1명의 상임위원이 있고, 야당이 2명, 여당이 2명, 대법원장이 3명을 지명한다. 여기에서는 위원장 또한 회의를 진행하는 역할을 담당할 뿐, 자신의 개인적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어떠한 행위도 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위원회 내에서는 가끔 자조적으로 봉숭아학당이라는 평가도 있는 것이, 논의의 수준이 떨어지고, 가끔은 본질에서 벗어나는 얘기도 나오며, 또 가끔은 위원의 결정 기준이 인권이 아니라, 정치적 고려나 여론이나 눈치보기이라는 생각도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안경환 위원장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위원회 내에서 한 건이 결정이 되면 주심위원을 지정하고, 또 주요 사업에서는 그 사업을 담당하는 위원을 지정하는 등, 많은 부분의 권한이양을 했다. 때로 사무처에서 작성해 올리는 안건에 대해 강력하게 밀어붙인다면 의사결정이 빨리 이루어지거나, 더욱 강한 톤으로 나갈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번 순연이 되면, 2주가 더 소요되고, 위원회로서는 더 생생한 적시의 의견을 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간혹 있었을 지 모르겠다.

 

오늘 프레시안에 곽노현 교수가 쓴 글처럼 안경환 위원장은 전혀 진보나 보수같은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아마 당신도 그런 수식을 거부하실 것이다. 차라리 낭만주의자라 할까 문인이라할까... 그런 색채가 짙다. 오히려 사람의 존재와 역설, 인간에 대한 관심이 많은 분이고, 예술에도 조예가 깊은, 감수성의 사람이다. 초창기에는 위원회 내 진보적인 직원들에게는 의구심의 눈초리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에 오늘의 이임사와 같은 비판의 소리는 외부에서 오죽했겠나 하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여하간 미국의 연방대법원 9명의 대법관들처럼, 인권에 대한 토론과 판단을 해야 하는 국가인권위원회 11인의 위원들은 아쉽게도 대법관들에게 비견할만큼 지적이거나 열의에 가득차다거나 아니면 정말 인권적 가치에 전념하지 못했다. 인권위원들에게 요구되는 요소가 여러가지가 있었다면, 모두를 골고루 갖춘 사람들부터 하나도 갖지 못한 사람까지.. 그런 사람들의 집합체 정도가 국가인권위원회위원들이라고 본다.

 

안위원장이 펴낸 책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그런 정도의 수준이 되길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의사진행방식이나, 결정하는 방식이나.. 아마도 당신의 의견이 강했을 때에도 그것을 먼저 드러내지 않고 가끔은 서로 상이한 위원들간의 토론을 통해 무언가 합의를 이루어내는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었는지. 그런 이상을 가졌던 것은 아닌가 나는 추측한다.

 

책은 재미있다. 지적이고, 생생하게 대표적인 미연방대법원의 판결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를 볼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회의도 재미있다. 코미디 수준처럼... 그래도 싸움박질은 하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오늘은 하고픈 말이 많았으나, 하지 못했고 여기 이렇게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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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내가 알고 있는대로 안경환 위원장의 품성상,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임사는 우회적 비판과 굴욕감과 이래서는 안된다고 하는 메세지가 묻어있다. 아래는 그 전문이다.

 


    친애하는 국가인권위원회 동료 여러분, 인권을 지고의 가치로 신봉하는 국민여러분, 저는 제 4대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원장에서 물러나 한 사람의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2년 8개월 남짓 전인 2006년 10월 30일, 바로 이 자리에서 저는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제게 주어진 3년의 법정임기를 채우겠다는 결의를 공언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앞당겨 떠나게 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법이 보장한 임기 만료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앞서 물러나기로 결심한 사유는 지난 6월 30일,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간략하게 밝혔습니다. 되풀이하여 말씀드리건대 새 정부의 출범 이래 발생한 일련의 불행한 사태에 대한 강한 책임을 통감함과 동시에, 정부의 지원 아래 새로 취임할 후임자로 하여금 그동안 심각하게 손상된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인권의 위상을 회복하고 인권선진국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할 전기를 마련해 드리고 싶은 강렬한 소망과 충정 때문입니다. 

   당초 취임의 변에서 말씀드렸고, 기회 있을 때마다 되풀이하여 강조했듯이 저는 인권이란 이념적 좌도 우도 아니고, 정치적 진보도 보수도 아닌,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 일용할 양식인 인류보편의 가치라는 믿음을 안고 살았습니다. 이 평범한 소신을 국가인권기구의 수장으로 지켜야 할 가장 으뜸가는 업무수칙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으며, 위원회와 ‘긴장어린 동반자’의 관계인 시민사회와도 일정한 거리를 둘 것을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모든 언론에 대해서 동일한 기준과 성의로 자료제공과 홍보활동을 할 것을 독려하고, 제 스스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의 소신과 노력은 극단적인 분리와 대립이 항다반사가 되어버린 세태 아래 빛을 잃었습니다. 이념적 지향이나, 정치적 입장을 떠나,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존중받는 일상의 인권을 신장하기 위해 쏟은 노력은 정권교체기의 혼탁한 정치기류에 막혀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설치근거나 법적 업무와 권한에 대한 성의 있는 이해를 애써 외면하는 듯한 몰상식한 비판, 무시, 편견, 왜곡의 늪 속에서 갈무리할 수 없는 분노와 좌절을 겪은 사람이 저 혼자만이 아닙니다.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재직 중에 얻고 쌓은 자신의 소회를 속속들이 드러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고, 당분간 할 수 있는 것은 침묵뿐’이라는 금언도 익히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연히 먼 장래를 기약하면서 홀로 가슴 속에 담아두기에는 너무나도  간절한 소망이 있기에 감히 몇 마디 당부와 호소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자부하듯이 한동안 우리나라는 아주 짧은 기간에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룩한 경이로운 나라로 국제사회의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국민의 일상을 짓누르는 군사독재의 질곡을 벗어던지고 대다수 국민이 일상적 자유의 공기를 만끽하는 나라로 발전했습니다. 사회의 발전에 따라 인권의 외연이 크게 확대되었고, 다양한 세계관과 삶의 행태가 공존하는 관용의 사회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성취는 많은 후발 국가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나 많은 나라의 시샘과 부러움을 사던 자랑스러운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근래에 들어와서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부끄러운 나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지난 해 7월, 고국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내뱉다시피 던진 충격적인 고백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국제사회에 나가보니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이 부끄러웠다.”는 유엔 수장의 솔직한 고백이 곧바로 국제인권지도에 기록된 우리나라의 현주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서글픈 현실을 수치스럽게 받아들이는 정부 관료나 국민의 숫자도 많지 않다는 사실이 더욱 수치스럽기도 합니다.     

   아직도 우리의 인권의식은 과거에 자행되던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직접적인 위해와 같은 노골적인 인권유린의 악몽의 포로가 되어, 진정한 선진사회를 향한 전향적인 발돋움을 위해 먼저 갖추어야 할 의식의 선진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권의 고귀한 가치는 정권의 교체나 연장에 따라 달라질 수 없을 것입니다. 정권의 교체는 국민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결코 국민은 인권의 탄압이나 후퇴를 선택할 리 없습니다. 앞선 정권의 실정의 유산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수반된 필연적인 변화로부터 구분해내지 못하면 때대로 시대착오적인 반인권정책의 유혹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선진사회’를 기치로 내걸고 압도적인 국민의 지지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1년 반이 지난 이날까지 그 장점이 만개하지 않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수장으로서 느낀 소감은 적어도 인권에 관한 한, 이 정부는 의제와 의지가 부족하고, 소통의 자세나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1월, 신정부의 정식 출범에 앞서 5년의 재임기간 동안 이명박대통령이 추진할 국정과제의 청사진을 입안했던 대통령 직 인수위원회는 ‘과도하게 높아진’ 인권위원회의 위상을 ‘바로잡기’ 위해 법적으로 독립기관인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변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여 국내인권옹호자들의 반발은 물론 국제사회의 엄중한 경고를 받아야 했습니다. 2001년에 설립된 기관이기에 인권위원회는 이른바 ‘좌파정부’의 유산이라는 단세포적인 정치논리의 포로가 된 나머지, 1993년 유엔총회의 결의에 부응하여 설립된 기구라는 것, 권고결의 당시에 국가인권기구를 보유한 유엔위원국이 5,6개국에 불과했으나 15년이 지난 오늘에 120개국으로 급증한 사실을 감안하면, 그 누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더라도 필연적으로 탄생했을 기관이라는 사실은 추호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국제인권의 추세에 둔감한 정부이기에 지난 3월 말에는 ‘효율적인 운영’이라는 미명 아래 적정한 절차 없이 유엔결의가 채택한 독립성의 원칙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기구의 축소를 감행함으로써 또다시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정부 내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과 국제사회의 흐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고위공직자들조차도, 위원회를 특정목표로 삼은 명백한 보복적인 탄압에 침묵하고 심지어는 불의에 앞장서는 안타까운 현실에 실로 깊은 비애와 모멸감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내 나라, 내 정부에 대해서 불만이 깊더라도 국제사회에서는 내 나라, 내 정부의 입장을 최대한 옹호하는 것이 공직자의 도리임을 믿는 저이지만 그간 빚어진 실로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일들을 국세사회에서 변론할 자신과 면목이 없습니다. ‘청구인 국가인권위원장. 피청구인 대통령’이라는 법적 형식을 취한 권한쟁의심판의 청구를 헌법재판소에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입장이 다를수록 요구되는 정부기관 간의 대화와 소통의 부재가 빚어낸 비극이기도 합니다. 지난 20년간, 한국의 민주화를 제도적으로 이끌어 왔다는 칭송을 받고 있는 헌법재판소는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이 사안을 심사숙고하여 결정을 내려주실 것을 믿습니다.

    국제적 기준에 따라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소임은 한 사안에서 나라 전체의 균형을 잡는 데 있지 않습니다. 국가권력의 남용과 부주의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일, 그것이 인권위원회의 본연의 소임입니다. 모든 국가기관을 대리하여, 약자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에 대해 고언을 제공하는 일, 그것이 국가인권위원회의 본질적인 임무입니다. 강자와 다수자에게 생길지 모르는 약간의 불편을 무릅쓰고라도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사회전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민주국가. 인권국가, 법치국가의 본령입니다. 힘없는 자의 분노를 위무하고, 가난한 사람의 한숨과 눈물을 담아내는 일에 인색한 정부는 올바른 정부가 아닙니다. 흔히 소수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다수자의 인권이 더욱 중요하다고들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평은 인권의 본질에 대한 성찰의 부족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은 다수결이 아닙니다. 사회의 모든 기재가 다수자와 강자의 관점과 이해를 옹호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인간세상의 자연적 속성이기에 인권의 본질은 강자의 횡포로부터 약자를 보호함으로써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언론에도 고언을 드립니다. ‘무관의 제왕’이라는 전래의 별칭이 상징하듯이 민주사회에서 언론의 권능은 실로 막강합니다. 그러기에 언론이 짊어져야할 책임 또한 무겁습니다. 다수의 독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거대언론의 경우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인권위원회의 생명이 업무의 독립성에 있듯이, 언론의 생명은 정확한 사실의 보도에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특정 언론사의 정치적 입장이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서도 보도는 정확한 사실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언론의 기본양식이자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입니다. 이른바 ‘북한인권’이나 ‘촛불집회’ 사건의 예에서 보듯이 국가위원회의 법적 권능에 대한 무지, 오해, 사실왜곡과 같은 부끄러운 언론행태는 불식되어야 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국가인권위원회 동료 여러분, 인간의 존엄을 숭상하는 국민여러분, 이제 저는 물러납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치적 배경과 철학이 다른 두 분의 대통령의 재직 중에 국제적 관심이 집중된 독립기관의 장의 직을 수행한 행운은 여느 대한민국 국민이 누리지 못한 특권과 축복이었습니다. 다만, 단 한 차례도 이명박대통령께 업무보고를 드리지 못하고 자리를 떠난 무능한 인권위원장으로 역사에 남게 된 것은 제 개인의 불운과 치욕으로 삭이겠습니다. 그러나 다시는 이러한 비상식적인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존경하는 이명박대통령께 간곡하게 호소합니다. 대통령께서는 유엔총회가 결의를 통해 채택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과 운영의 원칙을 존중하고 국제사회의 우려에 경청하시기 바랍니다. 저의 후임자는 정부와 국민의 존중과 사랑을 받아, 지난 8년간 위원회가 범한 약간의 시행착오를 극복하는 한편, 그동안 이룩한 찬란한 업적을 발전적으로 승계하기 바랍니다.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사랑으로 저를 지켜주었던 동료들께 감사를 드리고, 위원회의 독립성을 유린하면서 강행한 정부의 폭거로 인해 창졸간에 직장을 잃게 된 동료직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인권의 길에는 종착역이 없다는 사실을. 또한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정권을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우리들 가슴 깊은 곳에 높은 이상의 불씨를 간직하면서 의연하게 걸어갑시다. 외롭지만 떳떳한 인권의 길을. 오늘 우리를 괴롭히는 이 분노와 아픔은 보다 밝은 내일을 위한 작은 시련에 불과하다는 믿음을 다집시다. 제각기 가슴에 품은 작은 칼을 벼리고 벼리면서, 창천을 향해 맘껏 검무를 펼칠 대명천지 그날을 기다립시다.  

   모두에게 건강하고도 화목한 가정의 축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7월 8일

    제 4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안 경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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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한 두 시간 정도 나가면 있는 블루마운틴은 세계자연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것은 가이드 설명이다) 유칼립투스 나무가 전체 산을 뒤덮고 있어 그 나무에서 발생하는 물질때문에 대기 전체가 푸르게 되는 산이라 그렇다고 한다.

 

 

세자매봉인데, 블루마운틴을 들르는 거의 모든 관광객이 거쳐갈 수 밖에 없는 지점이다. 아마도 인터넷에 뒤지면 비슷한 각도의 사진들이 나올테다.. 사진찍는 지점이 정해져있으니. 여하간 세자매봉에는 옛날 세자매, 아버지, 마법사, 반지에 연관된 전설이 있는데 정확한 스토리는 기억나지 않는다.

 

 

 

호주의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면 산을 그릴 때 위로 솟은 산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편편한 고지대에서 아래로 깍아들어간 협곡으로 산을 표현한다고 한다. 저 라인처럼.. 산도 별로 없는 호주에서, 블루마운틴. 그야 말로 산의 모양은 저런 모양이다. 보고 배우는 것. 그 차이가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블루마운틴의 코스.. 갱도에 들어가는 레일기차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서 위를 올려다보면 이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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