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뉴욕 출장이었다. 짬을 내서 모마에 들렀다. 몇 군데 현대 미술을 전시하는 곳에 들러봤지만, 그곳의 컬렉션은 과연... 이라는 찬사가 나올 법했다. 결국 현대 미술 시장을 지배하는 큐레이터의 시각과 돈.. 그것이 드러나는 실체를 보게 된 것이다. 수년 전 뉴욕에 들렀을 때 모마는 공사 중이라 보지 못했다. 

내부의 정원에 Wish Tree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결국 기원하는 것은 사랑과 건강, 행복, 평화 정도 되려나. 많은 소원이 달려 있는 나무. 이 컨셉은 요 몇 년 수련회에서나 심지어 카페에서도 보기도 한다. 여하간 나도 한 가지 소원을 적어 걸어두고 왔다.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하기엔 너무 이를까. 아니, 어쩌면 그 소원이 이루어낼 내 마음의 의지와 간절함이 사라져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몇 달 되지 않았으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간 것같다. 사진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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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현대식 건물인 왕립도서관을 나와 비교적 빠른 속도로 달리는 길을 무단횡단했다. 그러면 의회 건물로 통하게 된다. 의회는 1700년대에 건립된 크리스티찬보그 성에 위치하는데 여기에 국립박물관 건물도 소재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내가 이 곳을 간 시각은, 날이 밝긴 했지만 저녁 8시가 넘은 시각이었기 때문에 박물관 관람은 어려웠고, 비가 부슬부슬 조금 떨어지는 날씨에 아주 조용한 정원을 발견하게 되었다. 카메라 충전기를 가져가지 않은터라, 여행 막바지에 이른 이 날 카메라 배터리 표시가 깜빡이기 시작해서 많은 사진은 찍지 못했다. 다만 성으로 둘러쌓인 곳에 푸르른 정원이 있고, 그 가운데 연못과 조각상이 있고 몇 마리 새들이 모여 있어 평온한 일상을 알려주는 듯했다.

 

나 외에 사람은 아무도 없는 조용한 정원...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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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부터 12일까지 3박 4일간 덴마크 코펜하겐에 머물렀다. 이틀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회의였지만, 도착하는 날 오후와 떠나는 날 오전, 둘러볼 시간을 갖게 되었다.

 

코펜하겐 시내 관광지는 중심부에 몰려 있어서 둘러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걸어도 충분한 거리이다. 사실 멀기는 하다 해도, 교통비가 워낙 비싸서 걸어다니는 것이 오히려 나았다.

 

코펜하겐 시민들이 자주 찾는다는 티볼리 공원에 가보니 입장료가 거의 100크로네에 달한다. 한국돈으로 하면 1만 몇천원인데 거의 2만원에 가까운 돈이었을게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밤늦은 시각 12시 15분에 시작한다는 불꽃놀이를 볼 수 있을 때까지 혼자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 그냥 '블랙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덴마크 왕립도서관으로 향했다.

 

덴마크 사람들에 대한 인상은 영어를 매우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리고 상당히 친절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이민온 사람들에게 돈을 줘가면서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유도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고 하니, 그것도 상당히 흥미롭다.

 

사진의 첫번째 건물은 덴마크 인권연구소(우리의 국가인권위원회)로서, 덴마크 대외원조정책자금의 지원을 많이 받고, 다른 나라의 인권상황 개선, 특정 인권주제에 대한 연구 등을 주로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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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 프랑크푸르트에서 경유하게 되었다. 유럽 출장을 가게 되면 경유하기 제일 꺼려지는 곳 중의 하나이다. 요즘 신형 항공기가 도입되어 개인모니터도 있고, 여타 환경도 좋은 편이라고 하니 항공사 직원이 그쪽 노선을 추천하여 거림찍한 마음에도 타게 되었지만.. 내가 그 노선을 싫어하는 이유는... 너무 남자들이 많다는 이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삼성과 LG 광고를 엄청나게 보게 되는데, 아마도 우리 기업체의 유럽 지사가 거기에 많이 있는 줄 안다. 그런 연유로 그쪽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겠지. 여하간.. 그래서 남성 서너명이 떼를 이루어 다니는 것을 보는 것은 물론이며 이번에는 1등석 비행기로, 비행탑승시간이 다 되어 늙은 남자 약 10명 정도가 모조리 다 검은 양복을 입고 재빨리 탑승구로 몰려드는 희한한 광경도 보았다.

 

암튼 내가 보며 참 특이하고 우습다고 느끼게 된 것은, 탑승승객과 환송나온 사람들이 헤어지는 게이트 앞에서였는데, 젊은 남녀가 거기서 한참 동안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딥 키스를 하고 있는 광경을 민망할 정도로 쳐다보고 있던 한국 중년 남성들의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문 앞에 내 귀에도 들릴 정도로 쪽쪽대며 키스를 정신없이 하고 있던 남녀가 있었고, 그 뒤편으로 탑승객 한 줄에 그 중년 남성들이 있었으며, 그들의 시선과 얼굴 표정을 관찰하던 내가 다른 줄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너무 우스웠던 것은.. 모두의 얼굴에 부러워하는 표정이 스친 것이다. 자기들끼리 뭐라뭐라 하는데 그 시선이 너무 대담하게 그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것도 키스를 하고 있던 당사자들이나 다른 외국 사람들이 본다면 좀 황당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그 연인들의 젊음과 정열적인 키스를 나누는 그 사랑을 언뜻 부러워하는 표정이 순간의 차이를 두고 모두의 얼굴에 제각각 들어났다는 것. 매우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그러고 보면, 모든 것 다 가진 성공한 50대 초반의 어떤 높은 사람이... 술자리에서 우리들에게 하는 말처럼.. 뜨거운 사랑한번 못해본 것이 아쉽다고 하더만..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한번도 가슴뜨겁게 사랑해보지 못한 사람들이여.. 살아있는 모든 순간에는 그렇게 뜨겁게 사랑하는 축복이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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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8일.

 

브뤼셀에서 업무를 마치고 오후 3시쯤 왕립미술관에 갔다. 고전과 현대 상설 전시관 관람료는 8유로..

벨기에 네덜란드 등 플랑드르 지방에는 이탈리아 등의 르네상스와는 또 다른 독특한 화풍을 보이는 화가들이 많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정물이나 풍경이 아닌, 우리 식으로 말하면 김홍도나 신윤복같이 사람들의 생활상, 풍속을 그리는 사람들이 몇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람들이 브뤼겔 아버지와 아들들이라고 한다.

 

피터 브뤼겔과 그의 아들 피터 브뤼겔 Jr. 얀 브뤼겔의 얼마 되지 않는 작품 중 대다수가 이 미술관에 있다. 지난 08년 비엔나 미술관에서도 브뤼겔의 작품들을 조금 봤는데, 벨기에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의 수가 훨씬 많은 것같다. 브뤼겔 방에는 아버지 피터와 아들 피터가 그린 거의 똑같은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나무, 사람의 묘사가 조금 차이가 드러나긴 하지만, 언뜻 똑같은 그림같이 보이는 그 그림들에 놀라게 된다. 게다가 생전에 그들 아버지와 아들은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전문가들도 어떻게 그렇게 유사한 작품을 그릴 수 있었는지,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많은 가설을 제시하고 있지만 원 그림에다 대고 그린 것은 아닌 것같다는 설이 지배적인 듯 하여 피 속에 흐르는 재능에 대해 신기해하며 감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여하간 두 피터는 아주 흡사하고, 얀 브뤼겔의 그림은 약간 다른 느낌이 있다.

 

루벤스의 방이 있는데, 플란더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가 죽음을 맞이한 '성모승천'과 제목이 같은 그림이 있다. 루벤스는 같은 주제의 그림을 여럿 그린 모양인데, 안트워프 성당에 있는 성모승천 그림이 나아보인다.

 

또 유명한 그림. 다비드가 그린 프랑스 혁명가 '마라의 죽음', 헨리 무어의 조각품 등이 있고, 5시 40분이 되자 나가라는 소리에 자세히 보지는 못한 현대미술관도 예상을 뛰어넘는 콜렉션을 보여주었다. 내 느낌으로는 퐁피두 센터의 콜렉션을 능가하는 정도랄까... 상당히 훌륭한 작품들이며, 현대미술관쪽 입구에 서 있는 거대한 아르테미스 여신처럼 보이는 여성의 조각품도 마음에 들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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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페이스북에 들렀다가, Jan, 우리가 얀이라고 불렀던 대학원 동창의 죽음을 접했다.

 

유엔평화유지군 아이티사무국에서 그의 얼굴을 올려두었다. 그 외에 물론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그 아이가 그 중에 한 명이었다. 사진을 다운 받아 저장했지만, 여기에 올리지는 못하겠다. 그래서 되는 일인지도 잘 모르겠고..

 

걔는 독일인, 콘라드아데나워재단에서 일을 했던가, 여하간 내가 공부하는 분야와 조금 겹치는 부분도 있어서 몇 과목 수업에선가 만났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나와 같이 집을 썼던 아이들과 친하기도 해서, 몇 마디를 나누었을게다. 그래도 나는 걔를 좋아하지 않았다. 외국에서, 유학생활하며 어쩐지 주눅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게다. 독일인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인지 뭔가 차가운 느낌이라 해야 하나.

 

페이스북에 올라온 그를 알던 많은 사람들의 얘기는, 매우 열정적이고 성실하고 이상적이고 최고의 인간이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은 솔직히 모른다. 그렇게 속깊은 얘기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으면 이십만명이 될지도 모른다는 아이티 지진 현장에서 동창이 죽어갔다. 지난 해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동창이 죽었다. 나와 같이 학교를 다닌 아이 말이다.

원래의 내 꿈대로, 용기를 갖고 찾아갔다면 나도 아마 상당한 목숨의 위협이 있는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젊은 나이인데 사고로 그렇게 가는 아이들이 있다. 그것도 비슷한 생각과 꿈을 가지고, 세계 이곳 저곳에서 일하며 살다가 폭탄테러로, 지진으로 목숨을 잃는다. 나는... 나는.. 이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일까. 죽어서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보다, 여기 이런 현실에서 머리도 굴리고,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조직이나 사람들과 싸움도 하고, 그러면서도 내 목적은 실질적으로 사람들이 진실되게 서로를 존중하면서 살기 어려워 가족 몰살시키는 자살은 하지 않고 노후 걱정하여 늙어 자살하지 않고, 또 거대 권력앞에서 비굴한 태도로 얘기하지 않고 당당하게 얘기하고 자기를 드러내고 자연의 이치대로, 인간의 본성과 이성이 적절히 조화된 채로 살아갈 수 있게끔 하는데 일익을 담당하는 것이라고 잊지 않고.. 그렇게 살아서 졸렬한 하루 하루 살이처럼 느껴질지라도 그렇게 사는 것이 나은 것인지.

 

그 아이와 크게 친하지 않아 페이스북에 안타까운 마음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나의 블로그로 돌아와 글을 남긴다. 편히 쉬어. 얀. 무엇 하나 제대로 너라는 사람에 대해서 묻지도 않았던 지난 세월이 아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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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리나 메르쿠리  (0) 2010.01.22

오늘은 금요일. 나는 회사에 앉아 남은 일을 하고, 글을 본다.

 

연말부터 몹시 힘들게 보내며 아무 일도 하지 못하다가 이제 조금 회복 중이다.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아마도 내가 늙어간다는 것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흔이라는 상상하지 못했던 나이가 된다는 것. 아직은 가정을 꾸리지 못했다는 엄연한 사실과 그것 자체보다는 일상에서 느끼는 주눅드는 심정과 은연중의 차별, 고정관념때문에 이도 저도 아닌 수인.. 그 나무 상자에 사람이 갖힌 형상을 하고 있는 한자처럼, 그렇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대학 졸업할 때에도 공부를 제법 하던 동기들이 그냥 사모님의 길을 택할 정도로, 기업체 입사에 여성 T/O가 눈가리고 아옹할 정도의 규모로 정해져있었다는 것을 보면 나의 역할 모델을 찾기도 매우 어렵다.

그래서 얼마전부터는 나이가 들어서도 사랑하고, 멋지게 산 여자들을 찾아보고 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여자로서 40대 중반에 아이를 임신한 모니카 벨루치도 보고, 오늘은 멜리나 메르쿠리를 찾아보았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스토리도 들은 적이 있다. 오래전부터 인권활동과 학자의 삶을 병행해온 나의 대학원 지도 교수가 그녀가 미국에서 망명생활할 때의 얘기를 들려준 적 있다. 홍대 앞 어느 술집, 5월 술한잔을 기울이며.

 

그녀는 내가 어릴 때 본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페드라' 영화를 좋아하는 아버지 덕에 가끔 명화극장같은 것을 같이 보곤 했다. 가끔 옆에서 아버지가 이 얘기가 어떤 얘기라는 얘기를 했다. 페드라를 외치며 자동차를 몰고 절벽으로 떨어지는 그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그 음악 선율이 귀에 오래도록 남았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였다.

 

멜리나 메르쿠리는 정치인, 명망가 집안에서 태어나 연극배우, 영화배우로 칸느 영화제에서 상도 받았고, 가수도 했고, 국회의원도 했고 문화부 장관도 했다. 그녀는 미인이지만 아주 여성적이고 어여쁜 얼굴은 아니고, 게다가 목소리는 더욱이 여성스럽지 않다. 그녀는 군부 독재에 저항했고, 미국에 망명했다. 그리스 인민들이 그녀를 너무 사랑해서, 골초인 그녀가 죽었을 때는 국민장을 했다고 한다. 나는 저 강인하고 약간 거만해보이는 여자가 좋다. 게다가 늙어서도 느껴지는 저 카리스마가 좋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녀가 명망가여서 매력이 있다기 보다는 다양한 재주를 가져서, 죽을 때까지 공적 임무를 갖고 정녕 그리스 인민과 그리스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싸워서, 죽을 위협에도 꿈쩍하지 않는 용기를 가져서.. 그래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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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O. Hausotter의 죽음에 기해  (0) 2010.01.22

2009년이 다가고 있다. 며칠 전부터 연말이라 그런지 지나온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 어느 새 나이를 아주 많이 먹었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결혼한 동생과 아직 결혼하지 않은 또 다른 동생과 함께 세 자매가 함께 박진영 콘서트에 갔다가, 2PM이라는 아이들이 나올 때 정말 엽기적으로 큰 비명을 지르는 아이들을 보며, 역시 나는 늙었구나.. 그 아이들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했다.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는 것도 어렵고, 도통 나와 같은 사고를 갖고 있던 사람들은 이해, 아니 납득하기 어려운 조직의 분위기도 그렇고... 나의 진로도 그러하고..

 

결혼을 하지 않은 나의 입장에서는 이제 더 이상 여자로 보이기 어렵다는 현실을 별로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데다가, 결혼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고,

 

나의 노년기는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늙어 고통받지 않으려면 아니면 그저 내 마지막 존엄을 지키며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나 스스로가 하지 않으면 국가든 사회든 가족이든 지켜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운데다가,

 

이제 거대 다국적 기업의 이사급까지 나타난 대학동기들의 삶에 견주어 나는 대체 뭘 하고 살았던가 하는 생각도 들고, 어제 만난 친구들은 아파트를 40평대로 옮길건가, 30평대로 옮길건가.. 또 아니면 부모가 재산을 어떻게 증여하고 있다, 재테크는 어떻게 한다는 얘기를 하고,

 

나는 여기 저기 끼지도 못하고 있다. 그래.. 이렇게 살려고 했었니? 아니... 아직은 재테크, 돈, 노후대책, 직장의 성공... 이런 것들과 동무하며 머리속을 채우기에는 내 젊은 날, 어렵고 힘들게 견디고 헤쳐나간 그 시절이 아직 내게 가까운걸.

 

난 무엇을 바랬던가. 여전히 사회는 공평해야 하고, 세상에 가치있는 일이 있어야 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어야 하고, 사람들간에 사랑하고 존중하며 배려해야 하고.. 그런 생각과 꿈을 꾸었는데, 여전히 나는 그런 꿈을 꾸고 있잖아.

 

그 어려운 여정 끝에 지금의 나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정도의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고, 내가 바라는 꿈을 위해서 나는 미력을 보탤 뿐 나의 의지와 바램대로 일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정도를 알 뿐이지만.. 그래도 나는 열심히 살아왔다.

 

뜨거운 사랑을 했고, 그것이 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든 내가 만드는 비인격적 문서의 주인공이든 그들의 삶의 숨결을 담고자, 느끼고자, 사람들의 삶을 망각하지 않고자 노력해왔다.

 

잘 해 왔다. 절대로 약해지면 안된다는 말대신, 뒤쳐지는 말대신, 지금 이 순간 끝이 아니라 나의 길을 가고 있다고 외치면 돼...

 

오늘에서야 제목을 알게 된 노래의 가사처럼.. 그저 나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그것이 내 인생의 legacy가 되기를 2009년을 보내며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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